[모던 경성] 클래식에 미치고 커피를 사랑했던 남자, 이효석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2021. 11. 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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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 차이콥스키 '비창', 베토벤 '대공'이 애청곡..'음악은 정신의 문을 열어주는 신기한 요술쟁이'
이효석은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그는 클래식광으로 불릴 만큼, 서양 고전음악을 즐긴 애호가였다./조선일보 DB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메밀꽃 필 무렵’을 쓴 이효석(1907~1942)은 ‘클래식’ 마니아였다. 봉평에서 대화까지 걷는 70리 길 풍경을 전원시(詩)처럼 기막히게 묘사한 이효석이 고전음악을 사랑한 애호가라는 사실은 낯설면서도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 출신인 이효석은 경성제1고보와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나온 엘리트였다.

조선일보가 발행한 월간지 ‘조광’(1937년3월)이 문화예술인을 상대로 일상의 기쁨을 묻는 설문 조사를 했다. 이효석은 ‘음악을 들을 때’ ‘헨델의 교향악을 듣고 음악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더욱 느꼈다’고 답했다.

평양 대동공전 시절 제자들의 증언도 일치한다. ‘선생님께서는 클래식 음악에 능통하고 계셨다. 그런데 우리가 평양에서 명곡을 접할 수 있는 곳은 ‘세르팡’이라는 명곡 다방뿐이었다…나는 클래식 명곡을 좋아해서 이 다방에 자주 들리고 싶었지만 용돈이 궁하여 자유롭게 들리지 못하였었다.’(정창희, ‘새롭게 완성한 이효석전집’ 8, 21쪽)

조선일보에서 낸 월간지 '조광'에 실린 이효석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 당시 제목은 '모밀꽃 필 무렵'이었다. 조광 1936년10월호

◇바이올린과 피아노, 근대 문명의 도구

1920년대 경성 사람들은 서양 고전음악(클래식)을 근대인이 갖춰야할 필수 교양으로 생각했다. 악기를 다룰 줄 몰라도 사고, 연주곡목을 몰라도 음악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소위 남녀 중학생 아이들까지 겨드랑이에 바이올린을 끼고 다니고 부자, 연인을 졸라서 제 집에다 피아노를 사 놓고 무엇이 무엇인지 뭣도 모르며 뚱땅거리고 앉아있는 모양’(현대남녀음악가에게 여(與)하노라, 별건곤 47, 1927년3월)을 어렵잖게 볼 수있었다.

문화주택엔 피아노를 들여놓고, 유성기나 축음기 음악 소리가 흘러나와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음악은 근대 문명의 필수 장식품이었다. 클래식은 서구에 대한 열망이 강한 경성 사람들이 갖춰야 할 교양이었다.

◇이효석의 ‘낙랑다방기’

다방은 고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거점이었다. 1934년부터 평양 숭실전문에서 교편을 잡은 이효석은 평양 음악다방을 순례하는 ‘낙랑다방기’(‘박문’, 1938년 12월)를 썼다.

‘차 한잔을 분부하고 3,40분 동안 앉아 있노라면 웬만한 교향악 한 편쯤은 완전히 들을 수있다. 차이코프스키 ‘파세틱’도 좋고, 베토벤의 트리오 ‘대공’(大公)같은 것도 알맞은 시간에 끝난다. 대곡이 너무 세찰 때에는 하와이안 멜로디도 좋은 것이며 재즈 음악도 반드시 경멸할 것은 못된다.’

이효석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과 베토벤 트리오 대공을 즐겨 들었다. 그는 평양에 다방이 더 많이 생겨나 학생 눈에 띄지 않고 드나들 날을 고대한다고 썼다.

◇쇼팽 ‘즉흥환상곡’은 영혼의 울음소리

이효석은 소설에 음악을 자주 등장시켰다. 재즈 바를 차렸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품 속에 재즈와 클래식을 곧잘 등장시킨 것과 비슷하다.

‘환상 즉흥곡의 멜로디는 그대로가 바로 느껴 우는 영혼의 울음소리였다.폭풍우같이 감정이 물결치다가 문득 잔잔하게 가라앉으면서 고유한 애수가 방울방울 떴는 듯-그렇게 느끼면서 듣노라니 미란에게는 낮에 본 바다 생각이 나면서 항구의 감상이 다시 가슴속에 소생되었다. 가을 나무가 우수수 흔들리다가 한 잎 두 잎 낙엽 지는 광경이 떠오르면서 그런 나무 선 바다의 애수를 노래한 것이 그 곡조의 뜻인 듯이도 해석되며 지금 몸이 마치 그런 배경 속에 서 있는 듯 감상속에 온통 젖어 버렸다. 폴란드의 정서는 왜 그리도 모두 슬픈 것일까.’

1939년 발표한 장편 ‘화분’(花粉)에는 쇼팽 즉흥환상곡을 비롯,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의 대표작이 잇달아 나온다. 단편 ‘가을과 山羊’엔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이 등장한다. ‘찻집에 들렀을 때 레코드에서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흘렀다. 열리지 않는 운명의 철문을 두드리는 육중한 음향이 거의 육체를 협박해 오는 지경이었다. 운명 교향악은 음악이 아니오 운명 그것이다. 운명 교향악을 작곡한 베토벤은 음악가가 아니오 미치광이나 그렇지 않으면 조물주다. 애라는 운명교향곡을 들을 때마다 몸에 소름이 치고 금시 미칠 듯이 몸이 떨리곤 한다.’(野談 1938년 12월)

주인공 독백을 빌려 음악을 찬양하기도 했다. ‘풍성한 음악을 들을 때같이 세상이 아름답고 환상이 샘같이 솟아서 살아 있는 것이 고맙고 즐겁게 여겨지는 때는 없다.이 생명의 감격이 눈물을 솟게 하는 것이다.’(‘성찬’(聖餐), 여성 1937년4월)

이효석이 스물세살 때 조선일보에 연재한 '마작철학' 첫회. 조선일보 1930년8월9일자

◇재즈를 사랑한 이효석

‘”적적들 하신 것 같으니 레코드나 한 장 걸까요.” 여주인은 친절하게도 축음기 앞으로 나아갔다. 단골인 터이라 두 사람의 은근한 사이도 벌써 대강 짐작하고 동정하는 눈치여서 간간이 그 정도의 친절을 베푸는 것이었다. 이윽고 ‘제 두 아무울’의 노래가 흘렀다.두 사람의 애인을 가진 여자의 노래가 낭랑하게 흘렀으나 그것은 미례의 현재의 정서와 심경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미례는 꽃같이 잠자코만 앉아서 서글픈 표정으로 노래를 듣고 있다.’(인간산문, 조광 1936년7월)

‘제 두 아무울’은 1930년 미국 흑인 가수 조세핀 베이커가 부른 ‘나의 두사랑’(J’ai Deux Amour). 지구 반대쪽 경성에도 프랑스 최신 샹송이 유행했다. ‘클래식 광’ 이효석도 ‘고전보다 차라리 재즈가 좋을 때도 있다’고 할 만큼, 재즈를 즐겼다.

이효석은 영화와 미술은 물론 커피와 식도락을 즐긴 모던 보이였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그의 대표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의 유명한 구절이다. 조선일보(1938년4월28일~5월5일)에 연재한 ‘채롱’엔 영화와 미술, 음악에 심취한 이효석의 일상이 담겨있다. 평양 냉면을 비롯한 음식 순례기를 기고한 적도 있다.

이효석은 음악을 요술쟁이에 비유했다. ‘음악은 정신의 문을 열어 주는 신기한 요술쟁이다. 마음속에 조그만 우주의 신비를 자유자재로 계시해 보이는 기막힌 요술쟁이다.’(단편 ‘일요일’, ‘삼천리’ 1942년1월) 커피와 음악을 사랑한 이효석은 서른 다섯이던 1942년 5월 뇌막염으로 일찍 세상을 떴다.

◇참고자료

이효석, ‘성찬’, ‘여성’ 1937년4월

이효석, ‘낙랑다방기’, ‘박문’ 1938년12월

이효석, ‘가을과 산양’, ‘야담’ 1938년 12월

이효석, ‘일요일’, ‘삼천리’ 1942년 1월

조윤영, ‘경성의 음악회(1920~1935): 식민지 일상과 근대의 경험, 그 다양한 시작에 대하여’, 이화여대 박사논문, 2018

임태훈, ‘음경’의 발견과 소설적 대응-이효석과 박태원을 중심으로’, 성균관대 대학원 석사논문, 2008

‘새롭게 완성한 이효석전집’ 8, 창미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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