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도스토옙스키 200주년
“그런데 여러분, 당신들은 내 증오심의 주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고 있겠지? 그렇다, 모든 문제는 내가 악하지도 않고 못된 인간이 될 수도 없으며, 내가 자주, 심지어는 가장 화가 났을 때조차도… 단지 참새들만을 쓸데없이 놀라게 해서 스스로 위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수치심과 함께 자각한다는 데 있으며 여기에 바로 추악한 것이 담겨 있다.”
도스토옙스키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 중 한 구절입니다.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가 쓴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열린책들)에서 읽었습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복수할 궁리를 하며 지하에 틀어박혀 있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죠. 석영중 교수는 “주인공은 자기 자신에게 분노하고 있다. 아니, 자기 자신을 거부하는 분노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많은 경우 우리가 누군가한테 화를 낼 때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것은 자신에 대한 분노”라고 말합니다.
오는 11일은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난 지 꼭 200년이 되는 날. 2000년 국내 최초로 도스토옙스키 소설 전작 전집을 발행했던 열린책들이 석영중 교수의 책과 함께 ‘악령’,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 등 대표작을 추려 8권짜리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을 내놓았네요.
‘죄와 벌’ 외엔 도스토옙스키를 읽지 않았는데, 언젠가 ‘백치’를 읽어보고 싶습니다. 미우라 아야코 소설 ‘빙점’ 속편에, 주인공들이 9월 어느 날 삿포로 식물원에서 얼굴을 문고판 ‘백치’로 가리고 잠들어 있는 남자를 발견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주인공들은 “현명한 사람 어쩌고 한 책이었더라면 더욱 우스꽝스럽게 보이겠다”고 말하지요. 이번 ‘빼빼로 데이’엔 빼빼로 대신 도스토옙스키를 선물하는 건 어떨까요?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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