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북 로'에 서점 한 곳뿐인데, 책의 '행복 냄새'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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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시에 이 거리는 서점 48개가 위치했던 ‘책방거리(Book Row)’이기도 했다. 패션과 지성이 공존하던 과거 뉴욕의 모습이다. 오늘날 이곳에는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 하나만 남아 있다. 캘빈 클라인, 움베르토 에코 등이 단골로 찾았던, 빨간색 로고가 찍힌 뉴욕의 패션 굿즈로도 유명한 서점이다. 1950년대 뉴욕에는 365개의 서점이 있었다. 매일 다른 서점을 들러도 일 년이 걸리는 숫자다. 현재 뉴욕에는 70여 개 정도의 서점만 남아 있다.
종이책, 전자책보다 흡수력 훨씬 좋아
책을 읽을 때는 잉크의 냄새, 종이를 만지는 촉감, 페이지를 넘길 때 나는 가벼운 바람과 특유의 소리 같은 정서적 경험이 동반된다. 책은 또한 무척 개인적인 것이다. 많은 사람이 『햄릿』을 소장하고 있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햄릿』은 특별하다. 그건 나의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생각해 보자. 아무리 DVD나 블루레이를 가지고 있어도. 그 영화가 내 것이라는 느낌은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책은 또한 좋은 선물이 된다.
요즈음 책은 덜 읽어도 개인 서재를 만드는 것은 트렌드다. 책을 꼭 주제별로 정리할 필요는 없다. 서재를 패션으로 생각한다면 책의 높이별, 색상별로 분류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떻게 정리해도 자신의 서재에 어디 무슨 책이 꽂혀 있는지 정도는 알기 때문에 상관없다.
앞서 언급한 뉴욕의 스트랜드 서점에는 책을 길이 단위로 재서 판매, 또는 대여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책의 종류에 따라 가격은 다르다. 책의 내용이 아니라 책으로 꾸며진 장식이 필요한 무대디자이너나 인테리어 데코레이터들이 주 고객이다. 이 프로그램은 의외로 인기가 있어서 플라자 호텔의 내부 장식,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세트, 랄프 로렌의 매장에 이용되기도 했다. 카페나 호텔, 부티크, 심지어는 술을 마시는 바의 인테리어 디자인에도 도서관이나 서재는 꾸준한 테마로 인기가 있다. 책이 쌓인 공간의 지적 분위기가 근사한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정보가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똑같은 책을 인터넷에서 찾아 컴퓨터스크린으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읽기를 마치면 우리 앞에서 소멸한다. 여운은 남지 않는다.
인쇄된 책은 다르다. 내용이나 기억뿐 아니라 하나의 실체로서 남는다. 영원히 나의 것이 된다. 인쇄물로 읽을 때는 흡수력도 훨씬 좋다. 무엇보다 읽는 시간의 질이 다르다.
과거 영국의 귀족들에게는 고급 책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인류 최초의 경매는 1600년대 영국에서 이루어진 책 경매다. 예전에는 생선 경매처럼 책 경매도 빈번했다. 지금도 소더비(Sotherby’s)와 같은 경매하우스에서 희귀본 위주로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오늘날 『어린왕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사』와 같은 책의 초판은 수억원에 거래된다.
현재에도 아름답고 좋은 책의 소유에 대한 선망이 있다. 구입자들은 책이 가지고 있는 유산 자체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또 개인소장의 기분도 즐길 수 있다. 미국에서 700만 명이 시청하는 TV 프로그램 ‘전당포 스타(Pawn Star)’에서도 종종 책 거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어린왕자』 같은 책 초판 수억에 거래
책에는 또한 종이, 천, 실, 잉크, 가죽, 먼지와 같은 요소가 결합된 물성(物性)이 존재한다. 많은 사람이 책을 쳐다보고, 만져 보고, 넘겨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짐을 느낀다. 책의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고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책의 냄새는 행복의 냄새다.
책에도 특별한 공간이 있다. 낱장이 겹쳐지면서 형성된 측면이다. 보통 간과되는 부분이지만, 간혹 측면에 고급 색칠이나 24K 금박이 덮인 책들도 있다. 물질로서의 금이 아니라 그 속의 진정한 지식의 보고(寶庫)와 지혜를 발견한다는 은유다. 이 좁은 책의 측면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경우도 있다. 마을이나 도시 풍경도 나오고 옷을 잘 차려입은 숙녀가 등장하기도 한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연세대, 미국 프랫대학원에서 공부했다. OB 씨그램 스쿨과 뉴욕의 도쿄 스시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뉴욕 아이디어』, 『천 번의 아침식사』 등을 쓰고, 서울의 ‘르 클럽 드 뱅’, ‘민가다헌’을 디자인했다. 뉴욕에서 ‘프레임 카페’와 한식 비스트로 ‘곳간’을 창업,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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