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예수와 비슷한 인물 같아 가장 만나보고 싶어
[조영남 남기고 싶은 이야기] 예스터데이〈36〉자질구레한 얘기 베스트
내 글을 연재해야 하는 횟수도 얼마 안 남았겠다. 지금부터는 내가 써내지 못했던 자질구레한 얘기들을 Best 형식으로 써내려가겠다.
내 초등학교 때의 꿈 Best: 구운 꽁치 한 마리를 나 혼자 다 먹는 것. 식구가 많았다.
내가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만화 Best: 찰리 브라운. 특히 피아니스트인 슈로더에게 늘 구애하는 루시가 짱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 가수 Best: 이탈리아계 시각장애인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 대중음악에서부터 오페라 아리아까지 자유자재로 구사 가능. 카루소나 파바로티보다 지루함을 덜 느끼게 함.
내가 평생 즐겨 입는 옷 Best: 검정색 군용 야전 점퍼. 여름엔 흰색도 있음. 왼쪽 가슴 부분의 번호는 군번이 아니라 세 아이들의 생일 숫자임. 양팔의 패치들은 청계천 상가에서 구입. 그곳 재봉사에게 의뢰 부착한 것임. 야전 점퍼는 원래 미국 군인들이 전쟁시 입던 제복으로 내 추측엔 세계적인 의상 디자이너들로부터 여러 경로를 거쳐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라 옷의 기능 면에서 최상이라 여겨짐. 나의 단골은 종로 5가에 지하상가의 요한양복점.
뉴욕 카네기홀에서 다시 공연하고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詩) Best: 이상(李箱)의 난해한 시 중 ‘이런 시’ 속에 들어 있는 한 대목 “내가 그다지 사랑했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나는 당신을 잊을 수는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오리다. 자! 그럼 내내 어여쁘소서.” 세상에 발표된 연애시 중에서 가장 우수한 연애라고 판단됨. 내가 직접 ‘이런 시’에 곡을 붙여 녹음을 끝낸 상태임.
내 평생 만난 사람 중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사람 Best: 미하일 고르바초프 부부. 구소련 연방을 해방시켰음. 너무나 다정다감했고 기라성 같은 자기네 음악가를 놔두고 오스트리아 쪽의 구스타프 말러를 좋아한 점.
내가 지금까지 본 TV 코미디 중 Best: 개그맨 고영수가 후배 엄영수(엄용수였음)를 데리고 다니며 선배로서 후배한테 역사적 교훈을 준다. 첫 장면 경복궁. “이 경복궁으로 말할 것 같으면 1683년 숙종대왕께서 당나라에 볼모로 끌려간 왕비를 그리워하며 애타게 기다리시던 장소였다네.” 이어서 창덕궁. 또다른 역사적 사실을 길게 설명한다. 엄영수는 말없이 듣고만 있다. 끝으로 노을 지는 한강변. “저 노을을 바라보게나. 우리의 인생도 저와 같아서 아침에는 해가 떠 화창하게 뽐을 내지만 저녁이 되면 해가 기울어 서산으로 지게 되는 거라네. 오늘은 이만 나도 이젠 집으로 돌아가야겠네”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 간다. 그때까지 한마디 말도 없던 엄영수가 입을 연다. “아이고! 저 선배님도 일정한 직업을 가지셔야 할 텐데.”
내 평생 가장 나를 웃긴 TV 멘트 Best: 개그맨 김형곤과 엄영수가 아침 뉴스 시간에 짧은 뉴스 앵커로 활약한 적이 있다. 엄영수가 “오늘의 긴급 뉴스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김형곤이 이어받는다. “전국에 딸자식을 가진 어머님들 각별히 주의하십시오. 방금 가수 조영남씨가 또 이혼을 발표했습니다.”
내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 한끼로 먹고 싶은 음식 Best: 삽교천 민물매운탕.
자칭 영화광인 내가 평생 본 영화 Best: 헝가리 영화 ‘글루미 선데이’. ‘닥터 지바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보다 우위에 둠. 한 여자가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나 죽을 때까지 지냄.
내가 좋아하는 묘비명 Best: 버나드 쇼의 ‘내가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나의 가장 자랑스런 직함 Best: 용문고 미술반장. 음악반장은 이장희의 삼촌 되던 내 짝꿍이었던 이영웅이 맡았음.
나의 가장 자랑스러웠던 공연 Best: 1973년 여의도 광장 세계적 부흥사 빌레 그레이엄 목사 설교, 김장환 목사 통역하는 대집회에서 군복 입고 특별 성가를 부른 것. 도미하는 계기가 됨.
내가 저지른 가장 큰 범죄 Best: 미국 체류 때 잠시 캐나다 공연을 갔다가 며칠 후 미국 공연 때문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야 되는데 비자 없인 재입국이 불가능하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그곳 대학교수 가족과 함께 가까운 버펄로로 결혼식 참석차 간다며 타인의 캐나다 여권을 빌려 들고 발발 떨면서 미국으로 위장 입국했던 범죄 사실. 뒷 트렁크에 꽃을 가득 싣고 위장 밀입국에 성공했음. 공소시효가 지난 일이라 관계없음.
육상 트랙경기 시청 광적으로 좋아해
우리말 중에서 가장 쓰고 싶지 않은 말 Best: 말할 때 "솔직히 말해서”라고 토를 다는 것. 사기꾼들이 많이 쓰는 어휘이기 때문임. 특히 쓰지 말 것을 친한 후배들한테 꼭 전달하곤 함.
내가 직접 만났지만 어영부영 사진을 못 남긴 친구들 Best: ‘하얀 손수건’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나나 무스쿠리. 영화 ‘닥터 지바고’의 오마 샤리프, 놀음을 좋아해서 쫄딱 망해 한국에 ‘오마샤리프’ 화장품을 론칭한다며 만나 친했으나 사진을 못 남겨 평생 후회함. 세계 3대 성악가 중 한 명이었던 호세 카레라스와도 친했는데 사진이 없음. ‘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를 불러 인기였던 B. J. 토마스 부부를 텍사스 공연 때 만나 친해졌는데 남은 사진이 없음.
나와 성씨가 똑같은 조물주 할아버지에 대한 불만 Best: 왜 여자까지 늙게 만들었는가.
두 남자의 눈물겨운 우정에 관한 이야기 Best: 한 남자가 매일 한 바에 와 꼭 술 두 잔을 주문, 한 잔을 마신 다음 또 한 잔을 마시고 떠나간다. 3년간이나 그렇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손님이 술을 딱 한 잔만 주문한다. 그래서 주인이 물었다. 왜 오늘은 한 잔만 주문하는가. 그러자 손님이 대답한다. "사실은 죽은 친구 한 명을 기념하면서 두 잔을 시켜 마시곤 했는데 오늘은 제가 술을 끊어서 한 잔만….”
내가 TV 스포츠 중 가장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 Best: 단연 육상 트랙 경기. 여자선수 앨리슨 펠릭스를 광적으로 좋아함. 88 올림픽 때 그리피스 조이너가 100m 기록을 깬 것. 칼 루이스와 벤 존슨의 100m 대결 직접 관람했음.
내가 만났던 인물 중 가장 아름답고 예뻤던 인물 Best: 자니 윤 쇼를 할 때 만나본 소피 마르소.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흠모하고 존경하는 인물 Best: 손기정.
내가 만나지 못했지만 가장 보고 싶은 인물 Best: 아르헨티나계 혁명가 체 게바라. 나는 왕년에 뮤지컬 ‘에비타’에서 체 게바라 역할을 맡았음. 가장 예수와 비슷한 인물로 여겼기 때문임.
내가 들어본 계산 중 가장 엉터리 계산 Best: 어느 날 나의 모친 김정신 권사님이 사과장수 아주머니와 흥정을 한다. "사과 한 알에 300원입니다.” 김 권사님, "그럼 세 알을 1000원에 주시죠.” 사과장수, "아이고 그렇게는 안 되죠.” 옥신각신.
내가 평생 본 화장실 낙서 중 Best: ‘예수 그리스도는 너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넘고 있는데 당신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바로 그 밑에 적힌 낙서. ‘똥 싸고 있다 시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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