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울산은 외솔 최현배의 도시
자신의 삶·정신 시조로 노래해
울산은 한반도 꼬리뼈 포항에서도 조금 더 ‘내려가는’ 곳이다. 언젠가 이 도시에 가니 그 이름난 태화강이 어찌나 단장이 잘 되었는지. 대나무숲도 대나무숲이려니와 이 강은 철새들이 찾아와 머문다고까지 하지 않던가. 태화강이 이렇게 변했다면 한국은 정말 딴세상이 된 것이다.
마침 밤이다. 사내는 그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찾아보기로 한다. 있다. 사내는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데도 그때도 이미 낡았던 건물이 남아 있는 데 놀란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현관문을 열고 어두운 지하 계단을 한발 두발 걸어내려간다. KTX는 순식간에 나를 과거에서 더 먼 과거로 시간이동을 하게 한다. 오늘은 1980년대 아니라 1940년대를 생각해야 한다.
외솔 최현배는 1941년 10월에 서울에서 일경에 체포돼 함경도 홍원경찰서로 끌려간다. 9월부터 시작된 검거 선풍이 서울로 번져 이병기다, 이희승이다, 최현배다 하는 국어학자들을 치안유지법 사건으로 옥에 가두어 버린다.
최현배처럼 한성사범을 나온 가람 이병기는 그 어둡던 시대에 국학 연구에 뛰어들었다. 교사 월급을 털어 고전 문헌을 사들이고 현대시조의 길을 개척했다. 그는 최현배와 같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다.
그보다 한 살 아래인 이광수는 일본 와세다에 2차 유학을 하던 중에 ‘무정’을 써서 일약 장안의 명사가 된다. 상하이로 갔다 귀국해서 ‘민족개조론’을 쓴 것은 외솔이 히로시마 고등사범을 거쳐 교토제대에서 공부를 하고 귀국, ‘조선민족 갱생의 도’를 쓴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는 1937년의 수양동우회 사건에서 결정적으로 ‘꺾인다’. 그 대일협력의 ‘진정성’ 여부를 두고 학계는 아직까지 논란이 많다.
이광수보다 두 살 아래인 최현배는 그렇지 않았다. 외솔이라는 호가 성삼문의 시조 ‘이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하니’에서 왔듯이 그는 꺾이지 않는 삶을 이루기 위해 고투를 벌였다. 그는 해방이 돼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긴 옥살이를 치르면서 그는 자신의 삶과 정신을 시조로 노래해 남겼다.
울산역은 통도사역이라고도 한다.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시내 쪽으로 향한다. 태화강은 역시 울산을 바꾸어 놓았다. 폐수로 악취가 나던 강은 과거의 저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바야흐로 현대가 떠나려 한다는 울산은 전원도시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그렇지만 이 울산은 최현배라는 존재를 함께 떠올려야 하나의 문화도시로 완성될 수 있다.
중구청에서 외솔 시조문학과 관련된 행사를 마치자 우리 일행은 부산 해운대로 가 하룻밤 묵기로 한다. 울산에서 부산은 도로가 좋아져 지척지간이다. 해운대는 고층빌딩들로 몸살을 겪는지 바닷바람이 빌딩 사이로 거세게 불어닥친다. 거기 90층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나는 발밑을 내려다본다. 잠시 잠깐 세속 세상에서 빠져 나와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러나 한갓 착각일 뿐이다. 여전히 세상은 내게 어떻게 살 것이냐를 묻는다. 외솔과 이 90층 빌딩 사이 그 까마득한 거리가 현기증을 일으키는 한밤. 그러면 나는 또 어떤 격랑을 맛보는 중인가.
방민호 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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