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달님 찾아..'청산별곡' 가락 따라 시작된 버들 도령의 모험 [그림책]

유수빈 기자 2021. 11. 5.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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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작은 못 달님
김지영 지음
향출판사 | 44쪽 | 1만5000원

깊은 산속 작은 연못엔 섬 하나가 있다. 그곳에 혼자 사는 버들 도령은 버들잎을 따 피리를 불며 외로움을 달랜다. 밤이면 찾아오는 손님인 달님을 기다리면서.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밤이 되고 달님이 버들피리 소리에 맞춰 한들한들 춤을 추면 연못에서 잠든 물결이 깨어나 반짝인다. 달님이 놀러 와 춤을 추면 버들 도령도 시름을 잊는다. 어느 날 몇날 며칠 뜨겁게 타오르던 해를 이겨내지 못하고 연못이 말라버린다. 찰랑이는 물결이 사라지자 달님도 더는 놀러 오지 않는다. 발만 동동 구르던 버들 도령은 달님을 직접 모셔오기로 마음먹는다. 도령은 분신이나 다름없는 버들피리와 버들가지, 마지막 남은 못물 한 병을 싸들고 길을 나선다. 가본 적 없는 길이 쉬울 리 없다. 낯선 길에서 도령은 동서남북으로 백보씩 맴돌며 헤매다 돌신령을 만난다. 도령은 버들가지로 돌신령의 굳은 몸을 풀어준 대가로 백두산에 이르고, 학을 만나 부러진 날개도 고쳐준다. 해 옆에서 달아오른 까마귀의 발에 못물을 부어 식혀주기도 한다. 그렇게 달님 곁에 다다르고 드디어 달님을 직접 못으로 데려올 수도 있겠다 기대하던 찰나, 달 두꺼비의 심술로 모든 것은 수포가 된다.

실망하긴 이르다. 예측하지 못한 불행에 걸려 넘어지는 만큼 때론 예기치 않은 행운도 찾아오니까. 놓쳐버린 은하수가 비가 되어 내리자 흙빛 못은 옥빛으로 되살아나고 시든 숲엔 생기가 돈다. 못에는 달그림자가 다시 휘영청 밝다.

깊은 산속에서 저 높은 하늘까지, 버들 도령의 여행을 따라 다녀왔더니 세상일이 뜻대로 다 풀리지 않는다 해도 삶은 계속된다는 진리가 새삼 떠오른다. 원하던 달님은 얻지 못했어도 못에는 달그림자가 남았다. 갑자기 말라버린 못에 마냥 주저앉아 있지 않고 길을 나선 것이 만들어낸 결과다.

예고 없이 다가오는 고난에서 벗어나려 한 발짝 용기를 내면 보이지 않던 세상이 열린다. 고마운 조력자가 나타나기도 한다. 모험이 끝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고 해도 빛나는 그림자를 남긴다. 다시 차오른 못에 뜬 달그림자가 이전보다 더 밝게 느껴지는 건 기분 때문만은 아니다.

세로로 길게 펼쳐 읽는 이 책을 펴면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락을 따라 모험이 흐른다. 그 여정 속, 옥빛 달과 연꽃이 은은하게 빛난다. 흰 구름이 떠다니고 학이 날아다닌다. 옛이야기 형식을 품은 이 책은 고려청자를 닮았다.

유수빈 기자 soo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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