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배우고 익히니 참으로 좋구나

광우 기자 2021. 11. 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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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 스님, 화계사 교무국장

학생 때 읽다가 포기했던 ‘논어’

세월 지나 읽으니 진리가 가득

요리·악기·기계수리·스포츠 등

배우고 익히는 것은 모두 공부

세월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흐르는 물처럼 꾸준히 정진하길

학창시절부터 동양고전을 좋아했다. 한때 장래 희망이 동양철학자가 꿈이었다. 중학교인가 고등학교인가 잘 기억나지도 않는데, 그때 ‘논어(論語)’를 한자 원문으로 보려고 애쓴 적이 있다. 논어는 위대한 사상가 공자의 말씀을 모아 놓은 동양 최고(最高)의 고전이다.

옆에 두꺼운 옥편을 두고 원문과 번역을 비교하며 읽고자 시도했다. 결국은 얼마 안 돼 포기하고 말았다. 한문 기초가 미천한 실력으로 짧은 문장 속에 긴 뜻이 함축된 공자의 말씀을 원문으로 홀로 보기에는 지치고 난해했다. 그래도 나름 애쓰면서 보려 했던지 책의 앞쪽 몇 장은 꼬질꼬질 손때가 묻어 있었다. 항상 느끼지만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늘 책의 앞부분만 시커멓게 때가 묻어 있고 나머지는 백지처럼 아주 깨끗하다. 내가 그랬다. 논어의 첫 장을 펼쳤을 때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온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하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제1편 학이(學而)의 첫 문장이다.

학자들은 이 첫 구절의 말씀이 논어 전체 20편을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한다. 잔뜩 기대하고 봤던 내 심정으로는 ‘이게 뭐야…’ 하고 심드렁하게 넘겼던 기억이 난다. 어느 한학자가 이런 말을 남겼다. “논어는 언뜻 보면 심심하다. 그래서 처음 글을 배울 때는 맹자같이 호탕하고 장자같이 현란한 문장을 좋아한다. 그러다가 삶의 연륜이 익어가고 글을 보는 눈이 깊어지면 결국 마지막에는 논어의 문장을 으뜸으로 삼게 된다. 마치 숭늉 같다. 논어는 숭늉 같아서 푹 우러나온 깊은 맛이 계속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 몇 번을 되새겨도 맛이 우러나온다.”

논어의 첫 장을 펼쳐보던 시절 뒤로 폭포처럼 세월이 흘러가 20년이 훌쩍 넘어 버렸다. 우연한 기회가 와서 다시 논어를 펼쳤다. 한동안 푹 잊고 있었던 논어를 열자마자 자연스럽게 첫 문장이 눈에 스며들었다. ‘배우고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배우고 익히니 참으로 기쁘다. 그 뜻을 음미하자니 절로 모르게 가슴을 두드리다 무릎을 탁 치며 고개가 끄덕여진다. ‘알고 싶은 것을 배우고 배운 것을 익히니 참으로 기쁘다. 이 배움의 기쁨이 공자의 진심이고 논어의 첫걸음이구나.’ 여드름 나던 어린 시절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그 한 구절이 지금은 내 마음속에 뽀얀 눈처럼 미소가 가득 지어졌다. 삶의 연륜이 쌓이고 문장을 보는 눈이 깊어지면 논어가 가슴으로 들어온다던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연륜이나 문장이 깊어진 것은 도저히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가며 그때보다 조금 더 철이 들지 않았을까.

세상을 살다 보니 가장 재미있는 것이 공부다. 물론 노는 것도 재미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공부가 가장 재미있다. 마흔을 넘기는 동안 이것저것 해 봤지만,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것은 역시 공부다. 공부가 지루하다면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정말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을 공부할 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공부다.

앉아서 책을 읽는 것만 공부가 아니다. 세상 속에 펼쳐진 모든 기술과 기예가 공부다. 빵을 만들고 요리를 하고 기계를 고치고 악기를 연주하고 스포츠를 하는 것도 공부다. 배우고 익혀야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각광 받는 학자들은 매일 공부하고, 훌륭한 기술자들은 매일 연구하고, 뛰어난 예술가들은 매일 연습한다. 우리가 살아가며 펼치는 모든 삶의 능력이 공부로 이뤄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요새는 근시가 심해서 긴 시간 독서 하진 못한다. 그런데 흥미롭고 궁금한 내용이 생겨서 꽂혀 버리면 순식간에 밤을 새울 때가 있다. 그런 때는 눈이 아픈 줄도 모른다. 날이 밝아서야 비로소 후회와 피로감, 그러면서도 묘한 충만감이 뒤섞여 밀려온다. 책을 보면 볼수록 보고 싶은 책이 끝없이 이어진다. 도서목록을 작성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책들을 읽다 보면 ‘도저히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겠구나’하고 현실을 자각한다.

그래서 꼭 필요하거나 가장 관심 있는 분야만을 찾다 보니 독서 편식이 생겨났다. 나름 책을 읽으며 애써 봤지만 뒤돌아보면 별로 이룬 것이 없다. 그저 독서의 소소한 즐거움만 누렸을 뿐이다. 지금도 옆에 가득 쌓인 책을 보면서 한숨을 내쉰다. 도대체 저 책들을 언제 다 읽을까?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지나간 날들을 후회하며 조금 더 바짝 공부했더라면 투정을 부려도 의미 없는 미련한 푸념이다.

이런 때면 가끔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독서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어디선가 들어 봤을 아주 유명한 글이다. 남송시대 대학자였던 주희(朱熹)의 ‘권학문(勸學文)’이다. ‘오늘 배우지 않고서 내일이 있다 하지 말고, 올해 배우지 않고서 내년이 있다고 하지 말라. 세월은 흘러간다. 세월은 나를 위해 기다려 주지 않으니, 아! 늙었구나. 이 누구의 잘못인가.’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린 소년은 어느새 흰머리가 가득해진다. 우리는 그저 저 흐르는 물과 같이 꾸준히 나아갈 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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