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마다 반복"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평행이론 '소름' (꼬꼬무)[어제TV]

유경상 2021. 11. 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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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훼리호 침몰 사건을 돌아보며 20년마다 반복되는 대형 여객선 침몰 사건 평행이론이 충격을 안겼다.

11월 4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1993년 서해훼리호 사건을 다뤘다.

28년 전 10월 10일 10시 생사의 갈림길에 선 세 남자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현철씨와 성회씨는 관광버스에 올라 바다여행을 가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직원 13명이 부부동반 위도로 향해 낚시여행을 하기로 한 것. 파도가 통통배가 심하게 흔들리며 파도가 심상치 않아 괜찮나 하는 사이 위도에 도착했다. 하지만 위도에 풍랑주의보가 떨어져 다시 배를 타고 돌아가야 하는 상황.

같은 시각 위도에서는 경찰 병길씨는 경찰서 동료 6명과 부부동반으로 위도에 놀러왔다가 “풍랑주의보 떨어지면 섬에서 못 나간다”는 말을 듣고 급히 배를 찾았다. 파도가 심해 통통배가 위태로워 보이는 상태에서 하루 한 번 운행하는 110톤 여객선 훼리호가 떴다. 그렇게 현철씨, 성회씨, 병길씨가 모두 훼리호에 올랐다.

사람이 너무 몰려 병길씨 부부는 배 가장 위 갑판, 현철씨는 2층 갑판 위, 성회씨는 선실입구에 겨우 끼어 자리를 잡았다. 파도가 심해 승객들이 오른쪽으로 몰리자 배가 더 심하게 흔들렸고, 곧 배가 파도를 맞으며 훼리호가 추진력을 잃고 바다 한가운데 멈췄다.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배에서 날아가 바다에 빠졌다.

2층 갑판 위에 있던 현철씨는 바다 위에 떠 있는 하얀 아이스박스 보고 붙잡았다. 병길씨 부부는 배 난간을 잡고 배와 함께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부부가 함께 용기 내어 난간을 놨다. 병길씨는 아내가 먼저 구명뗏목을 붙잡는 모습을 보고 자신은 아이스박스를 붙잡았다. 성회씨도 깨진 선실 창문으로 나와 아이스박스를 붙잡으며 살았다. 낚시꾼들이 많아 아이스박스가 많았고 튜브 역할을 했다.

그렇게 바다 위를 떠다니던 사람들도 10월 차가운 물속에서 하나둘 죽어갔다. 위도 앞바다에서 낚시꾼들과 함께 낚시를 하던 10톤 낚싯배 종국호 이종훈 선장은 서해훼리호가 침몰했다는 무전을 듣고 낚시꾼들을 설득해 현장에 도착했다. 사고 20분 후 죽은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는 가운데 이종훈 선장과 낚시꾼들이 44명을 구조했고, 뒤이어 46척 어선이 줄지어 나타나 총 70명의 사람을 구조했다.

병길씨가 70번째 마지막 생존자였고 해경은 불행히도 도착하지 못했다. 병길씨는 여인숙에서 여자 하나가 남편이 죽고 혼자 살아남았다며 울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아내와 상봉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탑승객 명단이 없어 상황 파악이 안 됐다. 당시 위도에는 매표소도 없었고 배 안에서 표를 팔았다. 실종자 가족들이 직접 가족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서해훼리호 선장과 승무원 7명이 전원 탈출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들이 구조요청, 안내방송도 안 하고 먼저 탈출했다는 것. 경찰은 위도를 원천봉쇄 선장과 승무원들을 찾으며 지명수배를 내렸다. 서해훼리호 선장 가족들은 선장에 대해 “그럴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서해훼리호 정원은 207명, 수색을 통해 사망자 138명이 발견됐다. 생존자 70명을 합치면 이미 정원 초과. 수색 5일째 선장, 기관자, 갑판장이 숨진 채 인양됐다. 이들은 조타실 앞 통신실에서 발견됐다. 마음만 먹었으면 탈출이 가능한 자리였지만 끝까지 제 자리를 지켰다. 선장 생존설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보도로 기록됐다. 총 탑승자 362명 중에서 최종 사망인원은 292명.

소문의 시작은 위도 파출소에 새로 온 직원이 선장과 너무 닮아 착각한 사람의 말을 기자와 검찰이 팩트 체크 없이 그대로 믿으면서부터. 헛소문에 온 국민이 휘둘리느라 정작 중요한 서해훼리호 침몰 이유가 묻혔다. 서해훼리호는 침몰 당시 정원을 141명 초과했고, 멸치액젓 600톤을 갑판 위에 실어 화물 중량도 6톤이 추가됐다.

이처럼 중량 초과가 된 까닭은 적자 노선이라 하루 한 번밖에 운행을 안 했기 때문. 위도가 낚시로 유명해져 관광객들이 몰려들자 주민들이 불안한 마음에 탄원을 했지만 모든 길이 막혀 있었다. 관계자들이 설마 사고가 나겠냐는 생각에 노선을 늘려달라는 주민들의 탄원을 무시한 것. 서해훼리호 1회 추가 운행에 드는 비용은 44만 8천원이었다.

그와 함께 우리나라 역사상 200명 이상 희생된 여객선 참사도 돌아봤다. 참사는 20년 주기로 되풀이되고 있고, 정부는 사고가 날 때마다 재발 방지 대책을 내세웠지만 거의 똑같은 사고 원인 때문에 사고가 터졌다. 장현성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를 겪었다. 20년 후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너무나 부끄러울 것”이라고 일침 했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뉴스엔 유경상 기자]뉴스엔 유경상 y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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