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산물, 극단주의 세계에 잠입하다

한겨레 2021. 11. 5. 0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Book]
소셜미디어에 독창적 수법 결합해
테러 서슴지 않는 급진화 양상
노이즈 마케팅에 언론 길들이기까지
이미 우리 곁에 널리 퍼진 극단주의
지난 2018년 1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유류세 인상과 구조 개혁에 반대하는 이른바 ‘노란 조끼’ 시위대 등이 프랑스 혁명의 상징인 공화국 광장의 마리안상에 불을 붙여 훼손하고 있다. 파리/UPI 연합뉴스

한낮의 어둠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
율리아 에브너 지음, 김하현 옮김 l 한겨레출판 l 1만7000원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닌다면 광인 아니면 선지자일 테다. <한낮의 어둠>을 쓴 율리아 에브너는 그 중간쯤에 해당한다.

지은이는 평일 낮엔 연구원, 교수로 활동하다 밤과 주말이면 극단주의 단체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들의 배타적인 집회, 암호화한 채팅방, 비밀회의 등에 잠입해 도대체 그들은 누구이고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를 파악했다. 그 결과물이 이 책인데, 극단주의가 시대의 산물인 점에서 이 사회에 던지는 경고 메시지로 읽힌다.

극단주의는 스타트업 기업과 유사하다. 이념이 만들어낸 거대시장의 틈새에 불과하며 충실한 지지자는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적다. 하지만 이들이 무대 삼는 소셜미디어의 특성과 이들의 독창적인 수법이 결합해 급진화와 테러 양상을 바꾸고 있다. 지은이는 권력구조, 정보 생태계, 민주주의 과정까지 재정의 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소셜미디어, 특히 유튜브는 극우 극단주의를 키우는 온상이다. 매달 순 방문자가 18억명, 지구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수익모델은 관심사를 끌어 모아 판매하는 거다. 따라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극단적 콘텐츠를 우선한다. 클린턴에서 시작하든, 트럼프에서 시작하든 결국에는 트럼프 영상이 추천되고 자동재생 된다. 페이스북도 비슷하다.

유전자변형 식품이 당신을 죽이고 있다. 당신이 마시는 물은 오염되었다. 백신은 유해하다. 은행가들은 전쟁을 조직하고 있다. 정치인 중에 실제로 소아 성애자가 있다. 그들은 수익을 내려고 당신을 계속 아프게 한다. 테러집단은 엘리트 집단이다.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이런 음모론은 전통매체에 대한 불신을 부른다. 젊은이들은 네오나치 계열 ‘MAtR’ 같은 극우 채널로 자연스럽게 끌려든다. 그곳은 아리아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며 무슬림이 유럽을 장악하고 있다, 홀로코스트는 일어난 적이 없다는 정보로 가득하다. 회원들은 채팅방에서 은밀한 경험과 비전을 공유하게 된다. 채팅방은 ‘에코 체임버’가 되어 낯선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를 대체한다. 집단의 이념을 위해 몸을 내던지는 ‘외로운 늑대’가 이렇게 만들어진다.

극단주의 단체는 대개 목표달성을 위해 노이즈 마케팅을 펼친다. 테레사 동상을 부르카로 덮는다든가, 이순신 장군 동상에 마스크를 씌운다든가. 유럽의 극우단체 ‘정체성운동’은 2017년 지중해에 배를 띄워 엔지오(NGO)들이 난민을 구조하는 것을 방해하고 이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했다. 도발적 퍼포먼스는 신문방송 보도를 통해 확대 재생산 되어 단체의 존재와 이념을 홍보한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일반인의 우향 시프트 또는 자기들 극우 세계관의 정상화다.

언론인 길들이기도 이들의 수법이다. 댓글을 통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는 가짜뉴스, 해당기사를 쓴 기자는 ‘기레기’로 몰아붙인다. 영국 매체 <가디언>이 삭제 처리된 댓글을 분석해 보니 여성기자가 쓴 기사에 달린 것들이 남성기자보다 훨씬 많았다. 괴롭힘을 당한 기자 10명 중 8명이 여성, 나머지 2명은 흑인 남성이었다. 국제기자연맹 연구로는 온라인 괴롭힘을 당한 여성 언론인 중 66%가 성적인 모욕, 굴욕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댓글, 강간 위협 등 젠더에 근거한 공격을 받았다. 피해자 63%가 심각한 심리적 외상을 겪고 38%가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고 대답했다.

이들은 기자를 상대로 ‘독싱’, 즉 집주소나 핸드폰 번호 등 개인정보, 또는 가족 연인 등 사생활 정보를 유포하여 공개적으로 망신을 줌으로써 침묵을 강요한다. 지은이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반급진주의 단체인 퀼리엄 재단에 소속돼 있을 때 ‘영국수호연맹’에 잠입해 극단적 민족주의의 국제화에 관한 글을 써서 <가디언>에 기고했다. 당연히 개인정보는 털렸고 연맹 설립자인 토미 로빈슨이 동영상 카메라를 대동하고 쳐들어왔다. 실랑이 장면은 그들의 채널에 고스란히 실려 망신을 당하고 기사를 철회하고 사과하라는 요구를 거절함으로써 그들에게 굴복한 재단한테서 해고통지를 받았다.

지난 2018년 7월 미국 플로리다 탬파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딥스테이트 음모론을 전파하는 ‘큐’(Q)의 추종자임을 밝히는 ‘큐어넌’(QAnon) 셔츠를 입고 트럼프에 비판적인 언론 <시엔엔>을 규탄하고 있다. 탬파(플로리다주)/AP 연합뉴스

극우 활동가들은 정치경제적 혼란을 캠페인 기회로 삼는다. 현 상태에 반대하는 주류 시위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2018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노란조끼 시위가 그랬다. 초기부터 이슬람과 동성애를 혐오하고 유대인을 반대하는 무리를 끌어모았다. 노란조끼 포스터와 그래피티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유대인의 개’, ‘유대인 쓰레기’로 칭했으며 시위대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정당은 마린 르펜의 민족전선이었다. 특이하게도 이들 조직은 게임방식을 응용한다. 미션 수행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계급을 올려주는데 잘하면 장교, 또는 장군으로 특진할 수 있다.

잔머리도 잘 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트렌드 기능을 이용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게시물에 관심을 보인다는 인상을 만든다. 해시태그도 이용한다. 트렌드가 된 해시태그와 유사한 ‘짝퉁’ 해시태그를 만들어 사용자들을 자기들의 담론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아예 게시글을 일시 도배함으로써 해시태그를 가로채기도 한다.

소셜미디어는 오프라인 동원도 혁명적으로 바꿨다. 급진 활동가들은 너무나도 쉽게 조직을 꾸리고 자금을 모으고 대규모 시위와 행사를 홍보할 수 있다. 온라인으로 관련 상품과 의류를 판매하고 암호화폐를 통한 크라우드 소싱으로 시위자금을 모은다. 암호화한 채팅방은 적을 향한 공격을 계획하는 공간이 된다.

이쯤이면 눈치 챘지 싶다. 지은이가 운운하는 극단주의 행태는 그들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이미 편만해 있다. 양극화 돼 있다는 얘기다.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