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물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정재훈 약사·‘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 저자 2021. 11. 5.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춥고 건조한 날이 계속된다. 이맘때면 ‘일주일 동안 매일 물을 마시면 생기는 변화’라는 제목의 기사와 동영상이 인기를 끈다. 매일 음료 대신 물만 마신다면 칼로리 섭취량이 조금 줄긴 할 거다. 하지만 몸에 큰 변화가 생기진 않는다. 게다가 물 아닌 음료로도 수분을 섭취할 수 있다. 2016년 영국에서 성인 남성 72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커피, 차, 콜라, 오렌지 주스, 라거 맥주를 마셔도 물 마실 때와 수분 보충 효과가 비슷한 걸로 나타났다.

겨울 건조한 피부를 촉촉하게 하려면 물을 많이 마시라는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 하지만 물 마신다고 물광 피부가 되진 않는다. 물을 마시면 피부의 독소를 제거한다는 말에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 피부가 건조한 공기에 오래 노출되면 수분을 더 많이 빼앗기고 건조해지는 건 맞는다. 평소에 물을 적게 마시는 사람이 수분 섭취량을 늘리면 피부 건조 증상이 나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물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노화로 인한 피부 주름이 펴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생각해보자. 겨울에도 입속은 침으로 촉촉한데 입술은 마르고 갈라진다. 체내 수분이 충분해도 공기에 노출된 피부는 건조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피부를 촉촉하게 하려면 보습 크림이나 로션을 발라주는 게 더 효과적이다. 미지근한 물로 3~5분 동안 짧게 샤워하고 나와서 바로 보습제를 바르면 좋다. 뜨거운 물과 과도한 비누 사용은 피부의 천연 유분을 제거하여 피부 건조를 악화시킨다. 가습기로 실내 습도를 높게 유지하는 것도 좋다.

물은 변비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몸에서 물은 대변보다 주로 소변으로 배출된다. 그래서 물을 많이 마시면 소변 보는 횟수만 늘어난다. 물만 마시는 것보다는 수분과 섬유질이 풍부한 과일, 채소를 먹는 게 낫다. 단, 섬유질을 주 성분으로 하는 변비약을 복용할 때는 물을 많이 마셔야 섬유질이 팽창해서 더 효과적이다. 약만 먹고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으면 오히려 변비가 악화될 수 있다.

심장 질환이나 신장 질환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물을 자주 마신다고 특별히 해로울 것도 없긴 하다. 하지만 물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이것 하나만 기억해도 불필요한 건강 속설을 제법 많이 걸러낼 수 있다.

정재훈 약사·'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 저자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