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154] 사망과 서거 사이
밥벌이 걱정해야 할 복학생이 딴 일로 정신 팔았다. 학교 도서관엔 가방만 앉혀 놓기 일쑤. 될 사람 밀어야 한다느니, 비판적 지지가 필요하다느니, 아무튼 군정(軍政)을 끝내야 한다느니. 후배들 꼬드겨 유세장으로 몰려다니기도 했다. ◯◯◯가 되면 이민 갈 거야. 허풍 돼버린 서른 몇 해 전 결기가 요즘 다시 돋는데….
그가 세상을 떠났다. 소식 첫마디가 다양하다. ‘노태우 전 대통령’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씨’ ‘전직 대통령 노태우씨’. 직함은 앞세우되 ‘노태우씨’라거나, 거듭된 호칭을 ‘노씨’라 함은 부정적 시각을 드러낸다.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은 동어 반복이라 지나쳐 보이고.
죽음을 표현한 말도 여럿. 타계, 별세, 서거, 사망, 숨졌다, 숨을 거뒀다, 삶(생)을 마감했다…. 특히 한자어에서 높낮이가 보인다. ‘타계’는 사전마다 ‘귀인의 죽음’이라 한다. ‘별세’는 ‘윗사람의 죽음’ ‘죽음의 높임말’이라는 풀이가 섞여 있다. 타계보다 높임이 자잘하나마 약해 보인다. ‘서거’는 ‘사거(死去)의 높임말’이라는 풀이로 보면 ‘별세’급. 다만 신분이나 명망이 아주 높은 이에게 쓰는 관행이 있다.
‘사망’은 ‘죽음’처럼 높낮이가 없다. 타계나 별세에 해당하는 ‘돌아가시다’를 안 쓰는 건 언론의 화법인데, 사망에 해당하는 ‘죽다’를 안 쓰는 점이 별나다. 삼가거나 돌려 말할 때 한자어를 앞세우는 언어 현실이 엿보인다.
‘운명(殞命)’ ‘임종(臨終)’도 있다. 둘 다 높낮이가 없되, 사망보다 어감이 부드럽다. ‘죽다’ 대신 ‘숨지다’ ‘눈감다’ 할 때와 비슷하다. 임종은 돌아가시는 부모 곁을 지킨다는 뜻도 있다. ‘작고(作故)’는 별세와 동급인 셈이다.
많은 이가 ‘영면을 기원’한다. 영원할 영(永) 잠들 면(眠), 죽음을 말할 뿐. ‘편안할 영(寧)’으로 잘못 안 탓이겠으나 ‘죽기 바란다’ 한 꼴이다. ‘편히 잠들기를 빈다’거나 ‘영면을 애도한다’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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