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 앞두고 꺼내든 파격..호암미술관, '반도체 강국' 뿌리 캤다

스페인의 작은 도시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이 자리잡고 '문화가 흐르는 곳'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데엔 한국의 역할이 컸단 우스갯소리가 있다. 유럽을 대표하는 공업도시였지만 한국의 철강·조선업 굴기에 밀려 녹슨 쇳물이 고인 마을로 쇠락한 빌바오가 꺼내든 생존카드가 바로 문화와 예술이란 점에서다.
철강부터 조선, 자동차, 그리고 반도체까지 '한강의 기적'을 일군 위대한 한국인을 만든 배경엔 야금(冶金)이 있다. 불로 광석을 제련·가공하고 일상에 쓰일 유용한, 혹은 값 비싼 무언가로 만드는 일에 있어 한국은 세계최고다. 이 같은 야금 장인정신의 근원이 궁금하다면 장구한 한국미술의 흐름을 짚어보면 된다. 한국 미술의 시초가 바로 불로 달궈진 금속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지난 3일 찾은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이하 호암)은 '위드 코로나'를 맞아 예술을 향유하러 나온 시민들로 생동감이 넘쳤다. 이들의 발걸음은 지난달 8일부터 호암에서 진행 중인 '야금 冶金: 위대한 지혜' 전시장으로 이어졌다. 삼성문화재단에 따르면 코로나19(COVID-19)로 휴관했던 호암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리움미술관과 함께 지난달 재개관해 기획전을 선보이고 있다.
1982년 문을 연 호암미술관은 삼성그룹 창업자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이 수집한 작품을 소개하는 국내 대표 미술관이이다. 한국 전통미술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알리고 국민들의 문화향유권을 확대하려 했던 이병철 회장의 뜻을 기려 고미술품을 전시해 왔다. 그런 호암이 2년 만에 다시 문을 열고, 첫 기획전으로 금속미술을 선택했단 소식에 적지 않은 미술 마니아들이 용인으로 향했다.
북방 스키타이의 청동기와 중국 철기문화를 받아들인 한반도에서 독창적으로 재해석된 금속문화를 표현한 한국의 금속미술이 한국 미의 정수로 일컬어지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금동불과 금관, 고려시대 은입사 작품과 나전 공예 등의 기반에 야금이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국보 5점, 보물 2점, 현대미술 9점, 국가무형문화재작품 5점 등 45점이 전시됐단 점에서 관심이 클 수 밖에 없다.

이번 전시엔 국보로 지정된 '세형 동검'과 현전하는 유일한 가야 금관을 볼 수 있다. 또 화려한 금 장식 뿐 아니라 1000년 이 넘은 녹슨 고대 철제 무기와 가야 갑옷도 볼 수 있다. 아말감도금으로 1000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은 금불상과 잔잔한 미소를 띤 철불도 눈에 띈다.

백미는 고미술품으로 구성된 전시 1~3부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마지막 4부 '예술: 위대한 지혜와 영원한 예술'이다. 고미술품이 아닌 현대 야금의 전통을 계승하는 국가무형문화재(한국공예장인) 작품과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작가들의 조각, 공예, 영상을 두루 전시했다. 옛미술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미술이 낳은 현대미술을 아우르며 한국 미술사와 호흡하겠다는 의도다.

실제 관객들은 전시장에 놓인 이우환 화백의 '철, 돌'와 박석원 작가의 '초토(焦土)'에 관심을 보였고, 금속으로 만든 2만3000여개의 서로 다른 인물군상으로 한반도를 표현한 서도호 작가의 '우리나라'에서 감탄을 뱉었다. 또 우리 야금문화의 정수가 꽃피운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배가 건조되는 모습이 담긴 박경근 작가의 영상미술 '철의 꿈'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유승목 기자 mo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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