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모호성'의 유통기한

정인환 2021. 11. 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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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성의 성도 지난시 주민들은 최근 당국으로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지난 1일 중국 상무부가 겨울철 대비 생활필수품 수급 관련 통지문을 내면서, 각 가정에 "돌발 상황에 대비해 일정량의 생필품을 확보하라"고 촉구한 것과 맞물린 탓이다.

"중국이 실제 대만을 침공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 정말 하려고 했다면 벌써 했을 거다. 겁주려는 것이어서,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중국군의 파상 공세가 이어지던 지난달 8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는 한 대만 대학생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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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특파원 칼럼] 정인환|베이징 특파원

중국 산둥성의 성도 지난시 주민들은 최근 당국으로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신청자 대상 추첨을 통해 1만가구에 전달된 것은 ‘재난·전시 대비용 응급가방’이다. 인터넷 매체 <펑파이>는 2일 누리꾼들이 올린 ‘개봉기’ 내용을 따 “인민해방군 군복 무늬 방수천으로 제작된 가방 안에는 응급 공구함, 소화용 담요, 비상탈출용 밧줄, 다기능 손전등, 양초, 방수 성냥, 미끄럼 방지용 장갑, 구조 요청용 호루라기 등이 들어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시 응급가방이 관심을 끈 이유는 따로 있다. 지난 1일 중국 상무부가 겨울철 대비 생활필수품 수급 관련 통지문을 내면서, 각 가정에 “돌발 상황에 대비해 일정량의 생필품을 확보하라”고 촉구한 것과 맞물린 탓이다. 여기에 ‘예비역 소집 대비령’이란 괴소문이 더해지면서, ‘대만 침공 임박설’이란 억측이 만들어졌다. 대만해협을 둘러싼 긴장 국면을 바라보는 중국 내부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 해프닝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지난해 9월께부터 중국 군용기가 남중국해로 이어지는 대만 서남부 방공식별구역(ADIZ)을 무시로 드나들고 있다. 중국의 국경절인 지난 10월1일부터 나흘 동안 전투기·폭격기·조기경보기 등 모두 149대가 투입되는 ‘역대급’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중국의 노림수는 세가지로 모아진다. 중국군의 실전 대비능력 향상과 잦은 대응 출격에 따른 대만군의 피로 누적이라는 군사적 효과다. 대만 내부의 긴장과 불안을 부추겨 차이잉원 정부에 압박을 가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깔려 있다. 미국에 대한 ‘시험’이란 외교적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대만해협을 넘나드는 중국 군용기는 ‘그래서 너희는 어찌할 테냐’고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이 실제 대만을 침공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 정말 하려고 했다면 벌써 했을 거다. 겁주려는 것이어서,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중국군의 파상 공세가 이어지던 지난달 8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한 대만 대학생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북풍’이 지나치면, ‘약발’은 떨어진다. 우리도 익히 경험했다. 인텔리젠시아 타이베이가 지난 9월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만 응답자의 60%가 ‘10년 안에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고 답했다. 전쟁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응답은 단 10%에 그쳤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대만 방어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백악관 쪽은 “바뀐 건 없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미국은 대만과 관련해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중국의 무력통일 시도도, 대만의 독립 시도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이중억지’가 핵심이다.

대만민의기금회가 2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중국이 침공하면 미국이 방어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5%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을 것’이란 응답은 17.1%에 그쳤다. 앞서 차이잉원 총통도 지난달 27일 미국 <시엔엔>(CNN) 방송의 같은 질문에 “대만-미국 관계와 미국 내부 여론, 미 의회의 지지를 봤을 때 그렇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답했다.

실제 미 국내 여론이 눈에 띄게 바뀌고 있다.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가 지난 8월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 ‘중국 침공 시 대만 방어를 위한 미군 투입을 지지한다’는 답변이 역대 최고치인 52%를 기록했다. 이 단체가 1982년 실시한 같은 조사에선 ‘지지한다’는 의견이 단 19%에 그친 바 있다. ‘전략적 모호성’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질까? 정세의 ‘모호함’이 점점 걷히고 있다.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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