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전문 변호사가 건넨 "진술의 팁"..피해자는 왜 따르지 않았나

임재우 2021. 11. 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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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과장 진술하란 조언 같아..정직한 승소 원해"
해당 변호사 "'전달'이 미흡하지 않게 사실관계 정리하란 취지"
게티이미지뱅크
법적 대응을 선택한 성폭력 피해자들은 누구보다 자신의 입장을 잘 이해해주고,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전해줄 변호자를 찾는다. 그러나 이런 선택이 또 다른 어려움의 시작이 되곤 한다. 성범죄 피해자의 변호사로 이름이 알려진 A변호사를 찾았던 이선희(가명)씨가 겪은 문제와 어려움을 <한겨레>에 털어놨다. A변호사는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진술의 팁’을 이씨에게 건넸다고 했다. 의구심을 갖고,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여긴 이씨는 그 조언을 따르지 않았다. 그저 이기기보다 옳은 길을 밟아 이기고 싶었다.
성폭력 피해자는 수동적이고, 변호인에게 의지만 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그런 생각은 ‘피해자다움’ 속에 갇힌 생각일 뿐이다. 이선희씨는 멈춰 생각했고,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방법을 선택했다. 이선희씨는 “A변호사 외에도 내 사건을 변호해주는 변호사가 여럿 있었지만 누구도 내게 이런 방법을 권하지 않았다. 다른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A변호사의 방식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했으면 한다”고 했다.

이선희(가명)씨는 5년째 경찰과 검찰, 법원을 오가고 있다. 이씨는 지난 2017년 대학원 지도교수로부터 당했던 성적 괴롭힘과 대학의 부당한 대응을 처음 세상에 알렸다.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대학 앞에서 1인 시위도 벌였다. 하지만 이선희씨가 법정에서 맞서야 했던 상대는 가해교수뿐만이 아니다. 이선희씨는 한때 자신을 변호했던 ㄱ변호사와도 법적 분쟁에 휘말려있다.

A변호사는 주로 성범죄 피해자를 대리해 오며 법조계와 언론계에 잘 알려진 유명 변호사다. 이선희씨가 A변호사를 떠올린 건 지도교수들이 불기소 처분을 받고 오히려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피소 당한 직후다. 인터넷으로 직접 이름을 검색해 이력을 살펴본 이선희씨는 A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기로 결정한다. 4년간 이어질 질긴 악연의 시작이다.

“변호사가 내게 ‘진술의 팁’ 권해”

2017년 11월, A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기로 한 직후 가진 면담. 이선희씨가 새로 작성한 고소장의 사실관계와 진술을 가다듬으려고 만난 자리였다. A변호사는 격앙돼 있었다. 자신이 맡았던 사건이 2심에서 패소했다는 이야기를 다짜고짜 꺼냈다. 이선희씨처럼 그 사건의 피해자도 대학원생이었고, 가해자 역시 지도교수의 친구라고 했다. A변호사는 이 사건이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인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저항이 소극적이라 피고인이 몰랐을 수도 있다”는 이유로 패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나만 당하는 게 아니구나”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A변호사가 뜻밖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그 선희씨가, 나쁜 사람이잖아? 그러면 몸에 닿았다고 이야기해요” “어차피 서로 거짓말하는 판국인데” “까짓거 조금 더 과장하는 건데.” 피해자가 진술을 조금 더 과장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다는 취지의 말들이었다.

A변호사는 이를 “진술의 팁”이라고 했다. “이 진술을 변호사가 앉혀놓고 종용할 수 없어요. 변호사는 진실의 의무가 있거든. 대신 내가 뭐를 할 수 있냐 하면 이런 것들을 예를 들어주면서 ‘이 경우 나라는 것을 명명했던 것들이 있으면 기소가 됐겠죠’라고 알려주면, 그 피해자들이 알아서 들어야 되는 거야, 평소에. …사회가 그 따위여가지고 인정을 안 해주면 나도 진술할 때 좀 개뻥을 쳐, 그냥.” 이어 A변호사가 말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사건에 이렇게 선희씨를 받아서 앉혀놓고 할 수가 없다고. 그것은 변호사법 위반이니까. 직업윤리 위반이니까.”

A변호사는 패소했다는 사건을 예로 들며 말을 이어간다. “이 사건도 있다 보면 그냥, 어차피 차 안의 상황은 아무도 모르고 블랙박스도 없어. …그러면 뭐 해야겠어요. ‘격렬하게 저항했다. 최선을 다해 밀었고, 그 사람 몸에도 멍이 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피해자 대부분 거짓말을 잘 못 해요. 그게 문제야.” 자신이 패소한 사건이 ‘피해자가 거짓말을 못 해서’라는 주장을 한동안 이어가던 A변호사는 선희씨에게 말했다. “일단 고소장 내용에 미진하거나 빠져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이 있는지, 그날의 상황과 관련해서…”

이선희씨는 그제야 어렴풋하게 A변호사의 의도를 알아챘다고 했다. 하지만 따르지 않았다. “‘왜 나한테 거짓말을 시키지.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면 나한테 문제가 생기는 거잖아. 아무리 그래도 내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가해자를 기소하는 게 의미가 있나’라고 생각했어요.” 이후 이씨를 성희롱하고 모욕했던 가해 교수와 동료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변호사 “법 성립 요건 맞춰 설명을 해야 한다는 뜻”

A변호사는 해당 대화가 “수사·재판과정에서 (당사자의) 전달이 미흡해 불이익을 보는 상황들이 있으니 피해자가 사실관계를 정리해서 진술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반박했다. A변호사는 <한겨레>에 “피고인들은 거짓말도 많이 하는데 피해자들은 거짓말도 잘 못하니까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도 제대로 전달을 못한다는 의미이지 거짓말을 하라는 말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피해자들이 알아서 알아들어야 한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없는 사실을) 지어내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피해자들이 법의 성립 요건을 알고 있어야 하고, 그에 맞춰 설명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A변호사가 권한 ‘진술의 팁’이 ‘위험수위’를 넘나들었다고 증언하는 피해자는 이선희씨뿐만이 아니다. A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던 다른 성폭력 피해자 박민아(가명)씨도 A변호사에 대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는 그 모습이 너무 불안했다”고 회상했다. 법적 대응이 처음이었던 박씨에게 A변호사는 증거수집을 위한 ‘비법’을 전수했다. 목격자 등에게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여러 멘트를 알려주면서 “대화를 하되 구체적으로 떠들면서 녹취해라. 이 사람들이 나중에 진술을 안 해줄 가능성이 90%이기 때문에…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연기를 해도 된다”고 했다. “제 사건에 필요한 증언을 모아야 되는데 자꾸 나쁜 짓을 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원래 증거수집은 이렇게 하는 건가?’ 했는데 이후에 만난 변호사들은 아무도 그런 방식으로는 일하지 않더라고요.”

성범죄 피해자들은 무턱대고 위험한 ‘진술의 팁’을 따르지 않는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피해가 없었는데 다른 의도를 갖고 고소를 하는 ‘무고’의 사례는 극히 드물다. 성폭력 무고죄로 기소된 피의자 수가 성폭력 범죄로 기소된 피의자 수에 견주면 0.78%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같은 연구에 따르면, 성폭력 무고 중 가해자에 의한 고소 사건 10건 중 8건은 불기소 처분된다.

일러스트레이션=이강훈 작가

“의견서 속 사건번호도 틀려”…“초안 고치는 중이었을 뿐”

이선희씨는 여전히 A변호사를 “내 편”이라고 여겼지만, 소송 대리에 대한 의구심은 커져갔다. A변호사의 요구로 시작했던 민사소송은 지지부진했다. 이선희씨는 “A변호사가 소송 대리에 소홀했다”고도 말한다. 선임계를 제출한 2018년 1월부터 사임계를 낸 2019년 3월 사이, A변호사가 이씨 사건 관련해 법원에 제출한 증거는 두 건에 그쳤다. A변호사 사임 후 항소심을 맡은 다른 변호사는 현재까지 60개가 넘는 증거를 법원에 제출했다.

둘 사이의 파국은 ‘의견서 제출’ 과정에서의 다툼에서 비롯됐다. 지지부진한 상황에 초조해진 이선희씨가 직접 대학에서 탄원서를 모으고 장문의 메일을 써 의견서 작성을 부탁했다. A변호사는 처음 거절했다가 나중 초안을 보내왔다.

그런데 며칠 후 ‘세세한 수정은 불가능하다’며 전달받은 의견서 초안에 “사건을 수년간 수임해온 A변호사 본인이 쓰거나 검토했다고 믿을 수 없는 내용들이 담겨있었다”고 이씨는 말했다. 관할 검찰청은 물론 사건번호도 잘못 기재되어 있었고, 사건의 핵심인 선희씨가 대학을 상대로 1인 시위를 했던 사유가 전체 맥락과 다르게 적혀있었다.

이씨는 의견서를 직접 검토한 게 맞는지 따지기 위해 A변호사와 통화했다. “그런 거면 내가 착수금 반 정도 돌려줄 테니까 민사하고 형사하고 다 가져가.”(A변호사) 행정소송으로 잠시 중단됐던 민사소송의 변론기일을 2주 앞둔 상황이었다.

A변호사는 증거 제출이 적었던 것에 대해 “이선희씨가 항고와 재항고를 거듭하다 보니 법원에 문서 송부 촉탁을 해도 수사기관에서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자료를 주지 않았다. 재판 자체가 ‘스탠바이’ 상황이라 자료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의견서의 일부 사실관계가 틀린 것은 ‘초안’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A변호사는 “초안을 보내준 것이고, 잘못된 부분을 고치는 과정이었다. 직원이 최종적으로 사건번호나 재판부를 확인해서 고치게 된다”고 했다.

법적 다툼으로…“거짓말 안 한 것 후회 안해”

그날 이후 이선희씨와 A변호사의 신뢰관계는 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었다. 며칠 후 이선희씨는 착수금 반환을 논의하기 위해 2019년 4월 가족과 지인 등 3명과 함께 서울 서초동의 A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A변호사는 이선희씨 일행이 사무실 앞에 도착한지 1∼2분만에 경찰에 신고했다. 이씨 쪽이 따지는 과정에서 먼저 물리적으로 실랑이를 벌였다고 보았고, 이는 결국 법적 다툼으로 이어졌다.

A변호사는 주거침입·퇴거불응·폭행·업무방해·모욕·명예훼손·공갈미수 등의 혐의로 이씨와 가족들을 연달아 고소했다. 검찰은 A변호사의 사무실을 찾아간 이선희씨와 가족·지인들을 벌금형 기소했다. A변호사는 이선희씨 일행이 사무실에서 벌인 실랑이로 자신의 직원이 폭행을 당했다며 이에 대한 정신적 상처가 크다고 했다. A변호사는 “(이선희씨와의) 관계에서 전 피해자고, 그 피해자 개인에 대한 오해나 명예훼손이 일어나는 걸 당연히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0월14일 서울중앙지법은 이선희씨의 귀책사유로 계약이 해지된 것이므로 착수금을 돌려줄 필요 없다는 A변호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A변호사가 민사사건 착수금 800만원 중 계약해지 전까지 업무 수행 관련 금액을 제외한 300만원을 이씨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다만 형사사건 착수금 500만원은 A변호사가 변론을 소홀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에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선희씨는 가해자와의 싸움, 이어진 자신을 대리했던 변호사와의 싸움으로 지쳐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A변호사가 “진술의 팁”을 말했을 때 이를 따르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거짓으로 가해교수를 기소했다면 그건 진정한 처벌이 아니잖아요.” 이선희씨와 A변호사는 오는 9일 국민참여재판에서 A변호사의 사무실 앞에서 벌인 승강이의 위법 여부를 다시 다투게 된다.

임재우 이정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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