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 고 "올림픽 이후 '닥공' 변신..올해가 데뷔 후 가장 안정적"

조수영 2021. 11. 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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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성장통 겪고 '골프천재'로 돌아온 리디아 고
10대 시절 14승 '천재소녀'
3년여 간 우승과 인연 없어
"슬럼프 길어 극심한 스트레스"
성적에 연연 말고 노력하면 성과
'멘토' 이영표 선수의 조언 큰 힘


‘천재소녀.’ 그의 이름 앞에 늘 따라붙던 수식어였다. 다섯 살에 처음 골프채를 잡은 뒤 2012년 호주여자프로골프(ALPGA)투어 NSW오픈에서 14세에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다. 그해 8월 아마추어로 캐나다퍼시픽오픈에서 우승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최연소 우승 기록도 새로 썼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7위의 톱랭커 리디아 고(24·뉴질랜드·사진) 이야기다.

“천재소녀라는 말은 언제나 큰 부담이 됐어요. 저 자신에게는 늘 거리감이 느껴지는 타이틀이었죠. 어릴 때부터 좋은 기회가 많이 주어져 우승도 하고, 제가 꿈꾸던 메이저 대회 우승도 일찍 했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그래서 성적이 잘 안 나왔을 때 더 큰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거든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리디아 고는 이렇게 털어놨다. 서울에서 태어나 여섯 살에 뉴질랜드로 건너간 그의 10대는 영광으로 가득했다. 2014년 16세에 프로에 데뷔한 뒤 남녀 골퍼를 통틀어 최연소 세계랭킹 1위, 최연소 메이저 우승의 주인공이 됐다. 10대 시절에만 14승을 거뒀고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는 뉴질랜드에 귀한 은메달도 안겼다.

하지만 어린 천재에게 닥친 성장통은 만만찮았다. 2018년 1승을 추가한 뒤 우승 소식이 멈췄다. 2019년 하반기에는 20위 안에 한 차례도 들지 못했다. 2017년 새 용품사와 계약하고 캐디, 코치도 한꺼번에 바꾼 탓이라는 호사가들의 말도 그를 따라다녔다.

 긴 슬럼프 딛고 두 번째 비상

하지만 올해 리디아 고는 다시 한번 날아올랐다. 지난 4월 하와이에서 열린 LPGA투어 롯데챔피언십에서 3년 만에 통산 16승을 올렸고, 8월 도쿄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따내며 올림픽 두 대회 연속 메달리스트가 됐다. 올 시즌 18개 대회에서 톱10에 여덟 차례나 들며 전성기 못지않은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소녀’를 떼어내고 ‘골프 천재’로 한번 더 비상을 시작한 셈이다.

“올해는 프로로 활동한 지난 8년 중 가장 알찬 한 해였어요. 4월 롯데챔피언십에서 ‘나는 우승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다시 느꼈고 각국 대표 선수들이 모인 올림픽에서 동메달도 따냈죠. ‘이 자리에 다시 올 수 있다’는 믿음을 회복한 한 해였습니다.”

10대에 맞은 영광이 컸기에 20대 초반 닥친 부진은 더욱 아팠을 터다. 그는 “슬럼프가 길어지면서 제 자신을 더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자신감이 떨어졌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지난해 타이거 우즈의 코치였던 숀 폴리를 스윙코치로 만난 뒤 난조를 보이던 드라이버샷이 살아났다.

“폴리 코치는 제게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 있다. 무언가 더 하려고 해서 바뀌는 건 없다’고 말해줬습니다. 가족과 후원사들도 저를 믿고 기다려주셨죠. 골프는 개인 스포츠이지만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란 걸 깨달았죠.”

축구선수 이영표의 조언도 큰 힘이 됐다. 이영표는 리디아 고가 한국에 올 때마다 만나는 멘토다. 이영표는 2년 전쯤 “지금 투자한 것이 3~5년 뒤에 실력으로 나올 수 있다. 당장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다독여줬다고 한다.

 무서운 뒷심·집중력 강점

리디아 고는 묵묵히 힘든 시간을 견디며 훈련했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 근육량을 7㎏ 가까이 늘렸다. 코로나19로 체육관이 문을 닫자 집에 피트니스 기구를 들여놓고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했을 정도다. 올 시즌 시작부터 부활의 시동을 걸었고 한 번의 우승과 꾸준한 경기력으로 ‘천재의 귀환’을 알렸다.

리디아 고의 특기는 무서운 뒷심이다. 경기 초반에 다소 부진하더라도 이내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해 마지막 라운드에는 어느새 리더보드 상단에 올라간다. 지난달 24일 부산에서 막을 내린 LPGA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첫날 1오버파로 공동 61위에 그쳤던 그는 2라운드부터 버디를 몰아쳤고 최종일에만 8타를 줄이며 공동 3위로 마무리했다.

“올림픽에서는 1, 2, 3등만 메달을 받을 수 있어 다른 시합보다 과감하게 쳤는데 좋은 결과를 얻으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때로 실수도 하지만 방어적으로 칠 때보다 스코어가 잘 나오는 것 같아요.”

 “한국·뉴질랜드 모두 대표”

20대 초반으로 되돌아간다면 또다시 스윙과 코치, 클럽을 모두 바꾸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는 “그래도 변화를 선택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10대 때 맞는 코치와 캐디, 클럽이 있었고 그분들 덕에 우승을 많이 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 상황을 유지했다고 계속 좋은 성적을 이어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언젠가는 바뀌고, 성장하고 변화하니까요. 제가 느끼기에는 지금이 가장 자유롭고 자신 있는 상태입니다.” 언젠가는 겪었을 성장통을 잘 이겨냈다는 자신감이 배어났다.

최근 알려진 연애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공개했다. 그는 “(남자친구는) 골프가 100%였던 제 삶에 골프 외의 행복을 알려준 소중한 사람”이라며 “가족 외에 저를 무조건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리디아 고는 두바이에서 열리는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아람코 사우디 레이디스 인터내셔널(총상금 100만달러)에 이어 LPGA투어 2개 대회를 끝으로 올해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그는 현재 LPGA투어 최저타수 1위 ‘베어 트로피’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선수다. 리디아 고는 ”항상 뉴질랜드와 한국 모두를 대표하며 뛰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한다”며 “좋은 기억이 많았던 올 시즌을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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