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핫라인] 국가미술전람회로 본 북한의 주체미술

오상연 2021. 11. 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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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TV

지난달 7일부터 북한 평양의 옥류전시관에서는 '국가미술전람회'가 열렸습니다. 올해는 조선화와 보석화, 유화, 각종 조형물 등 500점이 넘는 작품이 출품됐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김정일의 <미술론> 발표 30주년을 맞아 개최됐습니다. <미술론>은 199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집필했다고 알려진 책으로 북한 미술의 원칙과 지향을 담은 최고의 지침서로 통합니다.

<미술론>의 핵심은 미술작품이 북한의 지배이념인 주체사상을 구현해야 한다는 겁니다. 책에서는 "'주체미술'은 '시대의 요구'와 '인민대중의 지향'을 반영하고 반드시 대중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는 풍경화에조차 자연 그 자체가 아닌 사상성을 반영합니다. 예를 들면 풍경화에도 백두산이나 금강산 등 북한이 자랑하는 지역이나, 혁명사적지 등의 의미를 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마디로 '주체미술'은 북한 체제와 사상에 완벽히 동화된 대중, 그리고 현실을 외면적으로 묘사해 그 사상적 내면을 드러내는 작품을 말합니다.

▲유화 <페허 우에 일떠서는 황철> (평양미술대학 미술가 박동걸 외 4명)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대형유화 <페허 우에 일떠서는 황철>(평양미술대학 미술가 박동걸 외 4명)은 북한 주체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황철'은 '황해제철연합기업소'를 부르는 것으로 한국전쟁으로 시설이 크게 파괴된 후 대대적 복구작업을 거쳐 1958년 조업을 재개한 북한 4대 철강 기업소 중 한 곳입니다. 동틀 녘,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모습은 '온 대중이 힘을 모아 제철소 복구에 나섰다'는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선중앙TV는 "복구건설로 들끓는 황철의 숨결이 가슴 뜨겁게 느껴지도록 했다"고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수지공예 <복받은 대지> (만수대창작가 미술가 리금성 외 3명)

그림들은 제목만 봐도 선명한 메시지가 떠오릅니다. 이번에 전시된 유화 <강북리의 집들이>(국방성창작사 미술가 김혁 외 2명)는 지난해, 수해로 생활 터전을 잃은 황해북도 강북리 주민들에게 새 살림집을 만들어준 이후 이뤄진 집들이 행사를 담았습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수지 공예 <복받은 대지>(만수대창작가 미술가 리금성 외 3명)는 아이들에게 우유를 제공한다는 노동당의 육아정책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 '북한 미술의 근본은 조선화'

김정일의 <미술론>애서는 "북한 미술의 기본은 '조선화'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조선화를 다른 미술 형식에 비해 확고히 앞세우는 것"이 "당의 시종일관한 방침"이라고 설명합니다. 조선화는 한국의 동양화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조금은 다릅니다. 북한 조선화의 가장 큰 특징은 재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기름 물감이나 아크릴이 아니라 먹과 채색으로 그리는 그림입니다. 아래 보이는 작품의 제목은 <조선화 '항일의 혈전만리'가 명작이라고 하시며>(만수대창작사 김성복 외)로 김정일 위원장이 조선화 한 작품을 지목해 칭찬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김 위원장이 지목하고 있는 조선화의 제목이 <항일의 혈전만리>입니다.

▲조선화 <조선화 '항일의 혈전만리'가 명작이라고 하시며> (만수대창작사 김성복 외)

조선화 작품은 언뜻 동양화와 비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인물과 장소 등에 대한 표현이 서양화 못지않게 세밀하고 사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조선화의 개성'을 살렸다는 것은 동양화 형식의 재료와 채색 기법을 사용했다는 의미입니다. 물감 등의 재료나 화풍은 동양화의 것을 가져왔지만, 사실적인 부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오중흡 7연대원들의 수령결사옹위 정신을 형상화했다는 <7연대의 나팔 소리>(국방성창작사 미술가 신금철)도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조선화입니다. 아래 작품을 보면 색채를 고르게 펴 바르며 농담을 조절해 서정성을 극대화하는 조선화의 우림기법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조선화 <7연대의 나팔 소리> (국방성창작사 미술가 신금철)

북한은 조선화를 민족 전통성에 북한만의 독창성을 더한 회화 영역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실주의 화풍에 기반하지만 색을 환하게 쓰고 색감이 부드럽게 번지는 효과가 있어 그림 전체의 분위기가 밝습니다. 다만, 북한에서는 사실주의 화풍에 기반하지 않은 우리 전통의 '문인화'는 철저히 배격합니다. 척결 대상인 양반들이 그린 그림에는 인민성도 사실성도 없다는 겁니다.

#. 보석화? 분무화? 다양성 속에 사라진 추상화

북한 화단에서는 '조선화를 기본으로 여러 가지 종류와 형태의 미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기본 입장이 깔려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고안된 장르가 북한이 '천연보석'을 갈아쓴다고 주장하는 '조선보석화'입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원리를 응용했다는 보석화는 조선화 위에 돌가루나 광물을 덧입혀 완성합니다. 보석화의 기법으로는 유화기법을 원용해 그림의 입체감을 살리는 방법, 공예처럼 특정 부위에 보석을 박아 생동감을 주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조선보석화는 지난 1988년 무렵 개발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1989년 11월, 북한 최대의 미술 창작 집단인 만수대 창작사에 조선보석화 창작단을 따로 만들 만큼 북한 당국이 집중 육성하기도 했습니다. 입체감이 느껴지고 변색 없이 반영구적인 보관이 가능해 한때 수출용 미술품으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조선보석화 <보석화를 개척한 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며> (만수대창작사 조준호)

위에 보이는 조선보석화 <보석화를 개척한 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며>(만수대창작사 조준호)는 김일성 전 주석이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해 보석화 미술가들을 격려하는 순간을 담은 그림입니다. 다양한 빛깔의 보석들이 종류별로 마련된 작업실에 김 전 주석이 들어섭니다. 최고 지도자가 천연보석을 손에 들고 작가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석화 특유의 온화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표현된 것이 특징입니다.

붓을 쓰는 대신 분무기를 뿌려 바탕 재질에 구애받지 않고 더 섬세한 표현을 할 수 있는 분무화도 조선화에서 분화된 형태의 그림입니다. 2000년 1월 26일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이 '평양 경공업미술창작사에서 분무화라는 새로운 형태의 미술 종류를 개척하고 여러 작품을 창작해 내놓았다'고 보도하면서 실체가 확인됐습니다. 이 밖에 금분가루를 활용해 순금을 화면 전면에 깔고 묘사 대상의 금색만 남겨두는 방법으로 그리는 '조선금니화는 우아하고 황홀한 관상 효과가 있다'고 평가받습니다. 북한 미술계는 나름대로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지만 추상화만은 보기 힘듭니다. 북한의 주체미술은 형식에서는 사실주의를 부각하고, 내용적으로는 선명한 메시지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 대중성과 집체창작‥'작가보다 작품'

북한 미술을 관통하는 '주체미술'의 핵심은 주체사상과 대중입니다. 과거 소수 엘리트 계층이나 부유한 계급이 누려온 미술작품의 가치를 인민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되, 주체사상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겁니다. 그래서 북한의 그림은 어렵지 않고 철저히 대중적이고 친화적입니다. 작품의 주제는 공동체와 국가, 역사와 관련된 것에서 가져오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항일유적지, 전투 현장과 김일성·김정은의 교시 현장 등이 단골 소재입니다.

▲조선중앙TV

대부분의 미술가들은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창작사에 배치돼 소속 미술가로 활동하게 됩니다. 북한의 대표적 창작사는 만수대창작사, 중앙산업미술창작사 등입니다. 이들은 졸업성적과 경력, 실력에 따라 6급에서 1급을 거쳐 공훈·인민미술가의 칭호를 받습니다. 미술가들은 개인 명의로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지만 '집체창작'에도 참여합니다. '집체창작'은 하나의 대형 미술품을 여러 미술가들이 함께 창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형 동상을 비롯해 선전 효과를 노리고 만든 건축물, 벽화 등의 미술작품은 대부분 집체창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산업미술은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의 척후대"

북한은 "생산제품을 아름답고 쓸모 있게 만드는"(김정일, 미술론) 산업미술이 "인민생활 개선"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난달에도 평양에서는 노동당 창건 76년을 맞아 '국가산업미술전시회'가 열렸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지속적으로 제품 디자인이나 상표 디자인에 특히 큰 관심을 표시하고, 산업미술계의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 4월 산업미술전시회장을 찾은 김정은 위원장은 제품을 먼저 설계하고 거기에 기초해 제품 디자인을 하는 전통에서 벗어나 디자인을 한 뒤 제품을 설계하라며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또 산업미술이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의 척후대'라며 역사적 사명과 역할을 부각했습니다.

▲조선중앙TV

북한의 미술가들은 폐쇄적이고 고립된 상황 속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품의 주제는 체제 선전과 사상 고양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고 작업은 당의 지휘와 감독하에 이뤄집니다. 북한 미술창작가들은 여전히 30년 전 김정일의 미술론에 기초해 창작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은 김정은 위원장의 교시도 이들의 창작활동의 중요한 지침입니다.

(오상연)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312330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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