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치지 못한 걱정, 여자 같지 않은 몸

한겨레 2021. 11. 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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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쿵쾅]내 이름은 김쿵쾅
운동을 좋아했지만 다이어트에 매달려 온 나
'튼튼한 몸'을 위한 운동을 해야겠다 생각한 이유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오랜만에 대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교수님은 저를 보시자마자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살이 왜 이렇게 많이 빠졌어요? 일이 많이 힘들어요?”하고 걱정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수님의 그 말을 듣고 “아유 교수님, 무슨 말씀이세요! 저 웨딩촬영 하려면 44kg까지는 빼야 돼요. 등 파인 드레스 입으려면 운동해서 등라인 잡아야 되고요, 오프숄더 드레스 입으려면 어깨랑 팔뚝 라인 잡아야 돼요. 아, 생각난 김에 이따가 피티(PT) 끊어야겠다.”하고 답했습니다. 별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살 빠졌다’라는 말에, 체중계 위 49kg라는 숫자와 23.8인치라는 허리둘레에 뿌듯해하며 운동의 목적을 여전히 ‘여자 같은 몸’을 갖는 데에 두고 있던 나날이었지요. 그런데 정신을 차리라는 신호였을까요? 며칠 전, 서재 책장을 정리하다가 <근육이 튼튼한 여자가 되고 싶어>라는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아주 좋아하고 또 잘했습니다. 아버지가 전직 운동선수이기도 해서 초등학생 때는 뒷산에서 평행봉을, 중학생 때는 단거리 육상을 했습니다. 유학시절에는 배드민턴 대회에 나가 여자 단식 3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작년에는 무도 단증까지 취득하기도 했을 만큼 말이죠. 이렇게나 운동을 좋아하는 제가 지금까지도 한 가지 떨칠 수 없는 걱정은 바로 ‘여자 같지 않은 몸’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몸매나 근육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해도 아무도 제 몸을 보고 ‘여자 같지 않다’고 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중학교 3학년의 어느 날 점심시간, 양치하고 학원 숙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같은 반 남학생 한 명이 제 종아리를 보더니 갑자기 “여자가 종아리가 그게 뭐냐? 맨날 그렇게 운동하더니 종아리로 김장해도 되겠다”며 다른 남학생들과 제 다리를 공개적으로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 체중은 고작 45kg. 저는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운동한 내 몸’을 싫어해본 적이 없는데, 그날부터 ‘근육이 생길까 봐’ ‘몸이 두꺼워질까 봐’ 운동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운동을 한다 해도 조금만 근육이 두꺼워지는 거 같다 싶으면 바로 하던 것을 그만두었고, 집에 와서는 맥주병으로 종아리를 문지르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한 시간이 넘도록 벽에 다리를 올려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육이 튼튼한 여자가 되고 싶어>라는 책을 읽다보니, 그토록 좋아했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도 너무 좋아하지만 무서워서 많이 못 하는’ 운동, 특히 ‘근력운동’에 대한 열정이 조금씩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의 지은이는 ‘근력운동 전도사’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 만큼 근력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케틀벨, 턱걸이, 데드리프트 등 근력운동을 다양하게 하고 있지요. 지은이는 지금 20kg짜리 케틀벨을 한 손으로 거뜬히 들어내는 멋진 ‘프로 운동러’이자 ‘근육부자’이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기에는 ‘나는 종아리에 알이 싫다. 텔레비전에 나온 사람들은 이런 알이 없다. 어떻게 하면 알을 없앨 수 있을까?’라고 적혀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TV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들은 마르고 ‘예쁜 몸’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2021년의 초등학교 6학년 중에서도 그 당시의 저자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있겠지요. 그런데 최근 불고 있는 긍정적인 바람은, 코미디언 김민경이 다양한 운동을 하는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 여자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이 출연하는 <노는 언니>, 박시영 배우가 출연한 <스위트홈> 등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근육있는 여자’ ‘힘센 여자’가 꽤 보이기 시작하고, <근육이 튼튼한 여자가 되고 싶어>와 같은 책들이 출판되기 시작하며 ‘강한 여자’를 동경하고 운동의 목적을 ‘예쁜 몸’, ‘여자 같은 몸’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 아닌 ‘튼튼한 몸’에 두는 여성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워낙 근력운동을 찬양하기도 하고, 읽다 보니 근육이 튼튼하고 근력이 좋아야 생활에서의 기초 체력도 좋아질 것 같고, 최근 저런 ‘강한 여자’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문득 ‘나도 근육이 튼튼한 몸을 가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동의 목적을 단순히 ‘예쁜 몸매’, ‘미용 근육’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튼튼한 몸’을 만드는 데에 두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웨딩드레스를 예쁘게 입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다시 시작하자’구요. 그리고 그 시작은 아마 저자가 추천하는 몇 가지 간단한 근력운동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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