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조전(弔電) 농단

기자 2021. 11. 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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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정상급 인사의 장례식 '조문(弔問)'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지만, 외교적 의미도 상당하다.

외교부는 지난달 26∼30일 엄수된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9일 보낸 조전(弔電)을 장례식이 끝난 1일에야 유족 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2일 "여러 국가의 조전 현황을 신중히 집계한 후 위로의 뜻을 모아 유족 측에 전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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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국가 정상급 인사의 장례식 ‘조문(弔問)’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지만, 외교적 의미도 상당하다. 적대국이라도 조문할 때에는 앙금을 묻고 대국적 제스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 5월 티토 유고 대통령이 사망하고 장례식을 치를 때 58명의 세계 정상이 참석했다. 동서 냉전이 치열할 당시 소련은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가 직접 참석했다. 티토 대통령이 비동맹 독자 노선을 걸었기 때문에 소련 입장에서 브레즈네프 참석을 계기로 유고를 다시 위성국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었다. 반면 미국은 지미 카터 대통령 대신 월터 먼데일 부통령이 참석해 소련과 비교됐다.

2005년 4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 때는 대만의 천수이볜 총통이 이탈리아로부터 비자를 받아 참석했다. 바티칸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손을 잡으려 할 때 장례식 참석을 계기로 유대관계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1994년 ‘김일성 장례식’ 때 극심한 남·남 갈등이 벌어졌다. 재야세력과 학생운동권은 조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곳곳에 분향소를 설치한 반면 보수단체는 조문을 용납해선 안 된다고 했다. 당시 남북 정상회담 직전까지 갔던 김영삼 정부는 결국 조문을 하지 않아 이후 남북관계 경색의 빌미가 됐다.

외교부는 지난달 26∼30일 엄수된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9일 보낸 조전(弔電)을 장례식이 끝난 1일에야 유족 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그것도 유족 측이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와 통화를 하다 시 주석이 조전을 보낸 사실을 알고 외교부 측에 문의하면서 알려졌다. 더 가관은 외교부의 해명이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2일 “여러 국가의 조전 현황을 신중히 집계한 후 위로의 뜻을 모아 유족 측에 전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조전은 유족에게 보낸 것이 아니기에 즉시 유족과 공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외교 결례도 아니라는 궤변도 늘어놓았다. 조전을 보낸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 어떻게 볼지를 생각하면 한심하다. 이런 외교부가 다른 큰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나.

문재인 대통령 모친이나 이희호 여사 장례식 때 북한이 보낸 조전·조화는 즉각 공개했던 것과 비교해도 ‘조전 횡령’ 사태는 국정 농단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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