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DARPA, 뭣이 중한디?

이관우 2021. 11. 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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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봉균의 밀리터리 AI <6> 한국형 DARPA
어떻게 준비해야 성공할까, 두 번째 이야기

성공적인 한국형 DARPA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국방고등연구계획국)를 런칭하고 운영하기 위해선 미국 DARPA를 벤치마킹하는 게 첫 번째 순서다. 그들이 어떻게 DARPA를 기획하고 운영해 왔으며 어떤 실패를 경험했고, 어떻게 발전시키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건 두 말할 필요 없는 명제다. 관료 지배적, 평가 중심적 연구 문화가 특성인 한국의 장점은 이런 벤치마킹을 진짜 잘한다는 거다. 특히 인터넷에 자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정말로 꼼꼼하고 자세하게 기관의 구조를 분석할 뿐만 아니라 모든 구성요소를  하나 하나 철저하게 파헤친다. DARPA의 나이가 이제 63살이고, 한국이 그간 이루어 낸 경제 성장의 상당한 부분을 연구비에 투자했던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와 과거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다양한 기관에서의 (아마도 열 번 이상?) 벤치마킹을 통해 DARPA의 장점을 우리나라에 도입하고자 했던 노력이 부단했으리라.  당연히 상당한 지식을 축적했을 거고 이를 바탕으로 준비도 잘 하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국형 DARPA에 대한 기획을 얼마 전 기사로 접했을 때, 지난 25년간 다양한 DARPA 과제의 기획에 참여하고 수행했던 필자의 경험으로 판단하자면 “아, 이거 99% 실패할텐데….” 라는 비관적 걱정이 앞선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큰 이유라면, 이런 ‘표면적’ 정보만으로는 아무리 DARPA를 수십 번 벤치마킹하고, 이를 한국 연구문화에 맞게 변형하고, 세계적 명성이 있는 프로그램 매니저(PM)를 모셔오고, 해마다 수조원의 연구비를  배정하고, 연구 실패를 당연시하겠다고 선포하더라도, DARPA가 60여년간 쌓아온 ‘무형적’ 생태계를 충분히 소화시키고 이를 한국형으로 만들어 내기 전에는 그냥 DARPA 흉내만 내다가 2~3년 내에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DARPA 같은 오랜 역사와 거대한 예산, 그리고 비효율적일 정도로 높은 자율성이 보장된 프로그램에는 당연히 이에 어울리는 뿌리깊은 생태계 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DARPA의 무형적 생태계를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DARPA의 벤치마킹은 잘해야 반타작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DARPA 생태계의 뿌리깊은 문화를 이해하기 못한 상태에서는 한국형 DARPA는 결국 수박 겉핥기만 하다가 끝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국의DARPA의 무형적 생태계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쉽게 이야기하자면 ‘PM들이 새로운 프로그램 과제를 기획하는 과정’과 ‘런칭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실패를 관리하는 묘미’이다.

오늘은 먼저 짧게는 3-4개월, 길게는 1년 넘게 걸리는 ‘과정’부터 소개해보겠다. 특히 더 먼 미래를 바라보는 연구일수록 이 준비 과정은 더 오래 걸린다. (참고로 DARPA라고 해서 모든 연구가 몇 십년 앞을 내다보는 것은 아니다.) 이 과정에 중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DARPA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는 수많은 크고 작은 회사와 연구소들,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들이다. DARPA와 관련하여 잘못 알려진 점 중 하나가 “모든 새로운 연구기획은 PM에게서 나온다”라는 것이다. 20%는 맞고 80%는 틀렸다. PM마다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코로나 이전에는, 새로운 DARPA PM은 80% 이상의 시간을 회사나 연구소를 방문하거나, 자기 사무실에서 이들과 미팅하는데 쓴다. 일단 실패를 줄이려면 소위 ‘SOTA(state-of-the-art)’를 꿰고 있어야 한다. 현재 누가 어디서 최고의 연구를 어떤 수준에서 하고 있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새로운 PM과 약속을 잡으려면 대개 1달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더 빨리 만날수록 PM이 구상하고 있는 기획에 대해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할 수 있기에, 새로운 PM이 공식적으로 DARPA에서 시작하기 전부터 서로 정보를 얻기 위해 수시로 연락하며 관계 구축을 시도한다. 한국 식으로 말하자면 소위 ‘줄’을 잘서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겠고, 이것이 필자가 이야기하는 DARPA 생태계의 ‘Bottom-Up’ 요소이기도 하다. 회사나 연구소, 대학의 입장에서는 PM의 눈에 들고 소통이 가능해야 과제에 참여할 확률이 높아지기에 스스로 자신들의 연구 수준을 높이는 데 끊임없는 노력을 하는 것이 ‘Bottom-Up’의 주체이다. 연구자 입장에서 가장 최상의 상황은 PM이 알아서 찾아와서 자기의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해서 ‘자랑’하고 ‘설명’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PM이 이미 당신의 연구 수준이 세계 최고이자 자기의 새로운 프로그램에 꼭 필요한 사람임을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 연구자의 팀은 새 프로그램에 거의 무혈입성이 당연시 된다. 이 연구자의 신원이 알려지면 다른 연구 기관이나 회사에서 같이 협력하자는 요청이 쇄도한다. 소위 ‘팀짜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 팀에 못 들어가게 되면 이 새로운 과제를 수주할 확률은 그만큼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개인적 인연 같은 ‘찬스’는 전혀 소용이 없다. 

이 ‘Bottom-Up과정’의 문화를 과연 한국형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할까? ‘공정’이 화두인 한국 정서에서 심지어 연구원을 정직원으로 채용하는 과정에서도 ‘블라인드’방식으로 결정해야 하는 문화에서 이런 미국식 줄세우기와 팀짜기가 한국에서 용인될 확률은 거의 제로라고 생각한다. 결론은 한국형 DARPA를 정말 잘 하려면 “뭣이 중한디?”에 대한 대답을 찾는 일이다. 정말로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까다로운 숙제다. 

<류봉균 대표>

▶현 (주)세이프가드AI 창업자 겸 대표
▶현 EpiSys Science 창업자 겸 대표
▶전 보잉 팀장, 수석연구원, 및 개발책임자
▶미국 콜럼비아대 전자공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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