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재정자립 위한 충격요법" 서울시의 억지

김영희 2021. 11. 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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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금 33% 이상 삭감 논란
오세훈 "진정한 독립 언론 뜻"
"방치를 독립으로 착각" 비판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1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2022년도 서울시 예산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은 미디어재단 티비에스(TBS·교통방송)의 출연금을 33% 이상 대폭 깎으며 지난 1일 “재정 독립이 진정한 의미의 독립 언론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언론계의 사명임을 상기시키려는 의도였을지 모르겠지만, 선의로만 해석하기엔 이번 결정은 납득하기 어려운 과정의 연속이었다.

서울시가 티비에스에 지난해에 견줘 123억원 삭감한 출연금 252억원 책정을 유선으로 전격 통보한 것은 지난달 25일이다. 7~8월까지만 해도 330억원대로 서로 이야기됐던 사항이 두달 사이에 뒤집힌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삭감하라는 지적도 없었다. 경만선 서울시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제출한 5개년 중기지방재정계획에도 티비에스에 대한 출연금은 매해 비슷한 규모로 잡혀있었다고 한다. 세번째나 서울시장을 맡고 있는 오세훈 시장이 행정의 기본 중 하나가 예측가능성과 연속성임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3일 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 나온 윤종장 서울시 시민소통기획관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티비에스의 재정 자립을 위해 충격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10월 초 출연기관 대상 경영혁신보고회에서 티비에스가 ‘재정확충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과 방송통신위원회가 티비에스의 상업광고 허용이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출연금이 있어 시급하지 않다고 여기는 점도 이유로 내세웠다. “이번이 방통위 방침을 바꿀 수 있는 적기”라서 ‘충격요법’을 썼다는 주장이다.

긍정적으로 보면 ‘희망사항’이지만 현실성에 비춰볼 땐 ‘억지’거나 ‘궤변’에 가깝다. 오랜 세월 ‘서울시사무소’였던 티비에스가 미디어재단 티비에스로 출범하며 독립한 것이 불과 2년 전이다. 수신료는커녕 상업광고가 불가능하고 방송통신발전기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연간예산 515억원에서 서울시 출연금 비중이 72%(2021년 기준)를 차지하고 공공기관 광고나 협찬, 캠페인 수익은 아직 20%대다. 반면 390명 규모의 회사 인건비 등 경직성 예산은 300억원이 넘는다. 이번 삭감이 고정비용 외 제작비는 대부분 없애라는 말에 다름없다는 것은 단순 산수만 해봐도 안다. 이날 한 서울시의원은 “손 묶어놓고 밥 먹으라 하고, 발 묶어놓고 뛰라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물론 공영방송의 재원 형태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적재원의 안정적 보장이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익성·공공성을 높이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은 충분히 가능하다. 상업광고에 전면 매달려야 하는 채널이 시청률 낮은 프로그램에 집중하기 어려운 건 상식이기 때문이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오 시장이 ‘방치’를 ‘독립’이라 착각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티비에스의 경우 재난방송·교통방송뿐 아니라, <우리동네라디오> <시민영상특이점>처럼 시민들이나 동네미디어에 직접 주파수와 시간대를 내주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방송을 하는 티비에스 이에프엠(eFM)은 국내 유일의 외국인 소통채널이다. 무엇보다 2년 전 재단 출범 당시 대표를 선출할 때도 시민평가를 도입했고, 시청자위원회 등 시청자기구에도 그 어느 방송사보다 실질적인 권한을 줘 지배구조 실험에서도 주목받아왔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지배구조 자체가 시민참여적으로 되어있고 서울시의 인사·조직 개입이 힘들다. 남은 방법이 예산뿐”이라며 “주민참여 분야와 티비에스를 겨눈 이번 예산 삭감은 다름 아닌 ‘시민’을 지우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명분으로는 ‘재정 자립도’를 내세웠지만 이번 예산이 결국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겨눈 것이라는 정치적 해석들도 이어지고 있다. 오 시장은 “티비에스가 지나친 편향성·선정성으로 국민들이 걱정한다. 나름대로 조만간 방법을 강구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서울시의 전략은 적절치도 영리하지도 않아 보인다. 특정 프로그램의 문제에 전체 예산을 ‘볼모’로 삼는 건 ‘언론 길들이기’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지나친 정파성을 띠며 진영 정치를 강화시키지 않느냐는 지적은 야권뿐 아니라 티비에스 내부나 시청자 기구에서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야권 출연자를 이전보다 늘리는 등 자체 개선의 움직임도 이어진 터였다. 하지만 과거 보수정권 시절 방송인들이 타의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던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서울시의 이번 결정은 특정 프로그램이 ‘탄압받는 이미지’만을 강화시켜줄 뿐이다.

전체 라디오 청취율에서 1~2위를 몇 년째 오르내리는 <뉴스공장>은 티비에스 자체수익의 70% 가까이를 끌어올 정도로 티비에스의 의존도가 높은 프로다. 홍경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뉴스공장이 뉴스원과 청취자를 직접 연결하여 독특한 저널리즘의 면모를 보이고는 있지만, 특정 프로가 방송사를 과잉대표하는 건 분명 건강한 구조가 아니다”라며 “극과 극의 대결이 될수록 좋은 저널리즘, 좋은 방송은 무엇인가라는 논의의 여지의 폭은 더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영희 선임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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