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노태우·노무현의 공통점

노석조 기자 2021. 11. 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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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國家葬) 결정에 반대한 이들도 고인의 공(功)으로 인정하는 정책이 ‘북방 외교’다. 탈냉전의 격변기였던 1980년대 말 노태우 정부는 두 팔 걷어붙이고 있는 힘껏 노를 저어 활로를 찾았다. 선제적으로 소련과 중국에 파고들어 외교 영토를 확장했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이 재임 중이던 2004년 1월 13일 노태우 전 대통령등 전임 대통령들을 청와대로 초청, 만찬장으로 향하고 있다./조선일보DB

노 전 대통령 별세 사흘째인 지난 28일 ‘노태우의 외교책사’ 김종휘(86) 전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과 통화했다.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이야 그 결과를 보고선 여야·좌우 불문하고 다들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당시만 해도 반발이 참 심했다”고 했다. 그는 “육사 교장이 대통령 면전에서 북방 외교를 비난할 정도로 여권·지지층의 반발이 특히 거셌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은 ‘길게 보면 이게 맞는다’ ‘통일과 나라 발전을 위해선 해야 한다’며 정책을 밀고 나갔다”고 했다. 눈앞의 ‘내 정치’ ‘내 진영’만 생각하면 추진하지 않는 게 이익이었던 정책이 ‘북방 외교’였던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런 노 전 대통령을 주목했던 듯하다. 그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는 지난 29일 가족 대표로 빈소를 찾아 “노무현 대통령은 돌아가시기 전에 역대 대통령들에 대해 평가를 하셨는데, 그때마다 노태우 대통령의 업무 수행을 매우 높게 평가하셨다”고 했다. 노무현은 노태우 정권 당시 야당 초선 의원이었다. 그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열린 청문회에서 5공 인사들을 몰아붙이다 명패를 집어던지는 모습으로 일약 스타 초선으로 떠올랐다. 두 노(盧) 대통령은 정계에 입문한 과정부터 대통령이 되기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결이 다르다.

그럼에도 이들에게는 성씨 말고 공통점 하나가 있다. 노무현도 ‘노태우의 북방 외교’처럼 여권과 지지층의 강한 반대에도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라는 결단을 내렸다는 점이다. 당시 이 결정으로 이른바 ‘좌좌(左左)’ 갈등이 벌어졌고 노무현 정부는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진영 논리에 매몰되지 않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 정책은 그를 비판하는 반대 진영에서도 높이 평가하는 정치적 유산(遺産)이 됐다. ‘노무현의 비서실장’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은 저서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진보 진영이 영원한 소수파로 머물지 않으려면 국가 경영에 대해 더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적었다. 하지만 훗날 야권도 인정할 문재인 정부의 유산이 무엇이 있을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넉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나선 주자들은 노태우의 북방외교나 노무현의 한·미 FTA처럼 진영을 뛰어넘어 국익을 관철하는 정책을 펼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미래가 거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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