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횡설수설
[경향신문]
이 지면에 글을 쓰는 한 해 남짓 동안에도 신변상 변화가 있었다. 직장 계약종료 후 직업훈련을 받으며 실업급여를 타다가 다시 학교에 들어갔다. 어제자(2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부모의 재력과 학력, 사회적 지위는 자녀의 학벌, 학력, 이후의 소득에 영향을 줘 ‘불평등의 연결고리’가 형성된다. 피부로 느껴온 현실이 공론화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나의 소외감, 맞지 않는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불편감을 사회적으로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빈곤 가구에서 나고 자라 우여곡절 끝에 서울의 명문대 수업 시간에 앉아 있다. 덕분에 내게는 이동해온 자리들을 비교할 능력이 있다. 고등교육의 장이 계급화되어 있다는 것은 같이 앉아있는 사람들이 나와 다른 언어를 쓴다는 의미다. 학생들이 대개 전문직 또는 대기업에 종사하는 부모를 뒀고, 교수는 이들의 배경을 당연시하며 강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마음 밑바닥부터 약간의 불안함이 차오르며 긴장상태가 된다. ‘가능한 한 똑바로 말해야지.’ 그런 생각을 한다.
빈곤 연구자 조은은 사회적 계급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와 말하기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그의 저작 <사당동 더하기 25>를 통해 드러낸 바 있다. 특히 전사한 텍스트로 논문 작업을 할 때와 달리 영상 작업을 시작하자 그 차이는 더욱 크게 두드러졌다고 한다. 연구자는 계급이 다른 연구 참여자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대학 공간에서 빈곤, 불평등 문제를 다루는 수업을 듣고 있다. 그런데 주거 빈곤이 관계 빈곤을 낳는다고 가정한 연구의 계획서를 발표하고, 구체적으로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질문받았을 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집이 좁고 더러워 친구를 데려올 수도 없고 친척들이 전혀 왕래할 수도 없었던 경험 등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지만, 그 모든 말이 저절로 삼켜졌다. 원론적으로 에둘러 말하면서 내 경험을 지우고 횡설수설했다.
대기업 정규직 20대, 30대들이 선호하는 업무조건에 대해 토론할 기회도 있었다. 주변에서 듣고 본 것을 말하며 나도 모르게 ‘세대 감각’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 말을 듣던 교수는 본인은 세대 구분보다는 계급이 더 큰 변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고 난 뒤 한참 생각해야 했다. 나야말로 세대론에 불만이 많음에도, ‘보통 사람들’의 세계에서 유독 세대론의 스피커로 환영받은 일이 많아서였을까? 어떤 말이 삼켜질 때 어떤 말은 손쉽게 주워 쓰게 된다.
나는 이 지면에서도 항상 방어 태세로 쓴다. 가령 기초생활수급제도를 비판하는 글을 쓰고 “수급받으면서 아르바이트했다는데 조사해서 돈을 뺏어야 한다”는 댓글이 돌아와도 놀라지 않는다. 예상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소 긴장 없이 말할 수 있는 곳은 일 년 반째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아랫마을 홈리스 야학이다. 아랫마을에 내 글을 가져가 읽을 때 나는 내 편들에게 일러바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항상 귀가 열린 사람들 사이에서만 살 수는 없어서, 오늘도 여기 가난해온 사람의 경험을 쓴다.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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