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1] 내일은 국민가수, 오늘은 '마싸' 가수
‘국민가수’란 무엇인가. 이름만 들어도 국민 모두가 아는 가수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자·남진·나훈아·조용필·이선희·BTS 등이 명실공히 국민가수다. 국민가수는 어떻게 될 수 있을까. 노래 잘하는 가수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 누구는 국민가수가 되고, 또 누구는 되지 못한다. 가장 큰 요건은 팬(fan)이 있는가 여부다. 오랜 세월 흘러도 누군가 국민가수라 불리는 것은 ‘팬’으로 지칭되는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광복 이전 활약한 국민가수로는 이난영(1916~1965)을 꼽을 수 있다. 젊은이들 중에는 이난영이란 이름이 낯선 사람도 있겠지만, 목포의 노래이자 민족의 노래로 일컬어지는 ‘목포의 눈물’(1935)을 적어도 한 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난영은 1940년대 이미 조선 유행가계의 ‘큰언니’로 일컬어졌다. 당대 신문은 “이난영은 조선 유행가계의 큰언니다. 조선의 유행가란 이난영으로부터 출발했고 이난영으로 하여금 존재한대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열여섯 살부터 지금까지 부른 노래도 수 없지만 걸작도 많다”(동아일보 1940년 3월 31일)고 적었다. 실제로 이난영은 200곡 넘는 노래를 발표해 광복 이전 활동한 여성 가수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
TV조선 예능 ’내일은 국민가수’가 요즘 화제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세상, 노래 잘하는 사람이 더 있을까 싶은데, 있다. 아니, 많다. 역류성 식도염의 고통을 이겨내고 ‘무명부’의 50세 박창근이 팀원들(박장현·권민제)과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를 불렀다. 내공과 구력에 더해 ‘진정성’이 가미된 노래를 들으며, 나는 김지하의 시 ‘무화과’를 떠올렸다. 시에선 술에 취해 토한 뒤 눈물 닦고 코 풀고 나서 “이봐, 내겐 꽃 시절이 없었어”라고 말하는 친구가 나온다. 그러자 또 다른 친구가 말한다. “이것 봐,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무화과 아닌가”라고.
그렇다. ‘꽃이 없다’는 뜻의 무화과는 사실 열매 속에 꽃이 핀다. 저마다 꽃피는 시기가 다르다. 때로는 속으로만 꽃필 수도 있다. 국민가수는 어쩌면 하늘이 내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안 되면 또 어떤가. 저마다 꽃피는 시기가 다를 뿐이다. 진정 좋아하는 것을 진심을 다해 하고 있다면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그 길을 가면 된다. ‘내일은 국민가수’ 예심에서 탈락한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 여기서 ‘마싸(My Sider·나만의 기준에 따라 사는 사람) 가수’가 되어도 좋다. 진심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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