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유기농 밥상 레시피
[경향신문]
땅끝마을 지인이 고구마를 캤다고 한 상자 보내왔다. 상자를 열자마자 흙냄새부터 났다. 토실토실한 자줏빛 고구마. 옛사람들이 겨울이면 주식으로 먹기도 했지. 반가워서 한 소쿠리 일단 찌고 물김치를 꺼내 호호 불며 맛봤다. 밤엔 난롯불에 구워 먹어보기도 했는데, 올해 첫 군고구마였다. 군고구마 장수들이 도회지 골목마다 지키고 섰던 기억들. 이젠 마트에서 기계로 구운 군고구마를 팔기도 하더군. 맛은 그대로인데 분위기 운치는 영 아니었어.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리틀 포레스트>엔 일본 시골에서 고구마와 토란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가을이면 토란 모임을 만들어 모이고, 토란 쪄서 된장국을 해 먹었대. ‘토란, 무, 당근, 우엉, 파, 버섯, 돼지고기를 넣고 육수로 끓여서 간장이나 된장으로 간을 한 토란국.’ 최근 대학생들에게 배웠는데 신조어 ‘쌉 가능’. 욕이 아니다. 완전 가능하다는 뜻. 팔다리 성한데 내가 뭔 요리를 못하겠어. 쌉 가능. 토란국도 급 당긴다. 정성으로 키운 농부의 토란을 구해서 된장을 풀고 내 유기농 밥상 레시피에 한 줄 보태보련다.
억새가 가장 좋을 때, 며칠 제주도에 다녀왔어. 돌고래 제돌이와 삼팔이가 뛰노는 바다와 따라비오름 억새는 가을가을 그랬다. 동생들이 뒤쫓아와 음식들을 사주고 갔다. 하루는 좋아하는 성게 미역국을 시켜 먹었어. 젓갈이 놓인 단출한 밥상이었다. 곧 아들 생일인데, 같이 먹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문득 했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가까운 인연들 생각이 나. 그게 바로 사랑이고 기도렷다.
사랑은 대를 잇는다. 레시피도 대를 이어 전해지지. 로마 성직자 무덤에 쓰여 있던 ‘호디에 미히, 크라스 티비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 삶과 죽음이 차례대로 온다. 부모가 좋아하던 음식을 훗날 자녀도 뒤따라 먹고 싶어질 날이 온다. 대를 이어 땅별에 살고 있는 우리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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