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상계의 거목' 리쩌허우 별세

박은하 기자 2021. 11. 3.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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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자유와 개인을 강조했던 현대 중국의 대표적 사상가 리쩌허우(李澤厚)가 3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신경보 등 중국 매체는 리쩌허우가 2일(현지시간)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숨졌다고 전했다. 신경보는 고인에 대해 1980년대 미학 열풍 속에 중국 청년들의 정신적 스승으로 존경받았고, 지식계에서의 영향력이 지대했다고 전했다. 천안문 사건 후 망명 생활을 했지만 1980년대 신계몽주의 사조를 이끌며 중국 젊은이들의 정신적 지주로 불렸다. 1989년 프랑스 국제철학아카데미에서 동양인으론 유일하게 원사(院士)로 위촉돼 라캉·데리다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평가받았다.

리쩌허우는 1930년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태어나 1954년 베이징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중국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수와 전국인민대표대회 교과문형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화혁명 기간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허난성의 농촌으로 내려갔다. 문화혁명이 끝나고 1970년대 말부터 왕성한 저작활동을 시작했다. 리쩌허우 중국사상사론 3부작으로 불리는 <중국근대사상사론>(1979년), <중국고대사상사론>(1985년), <중국현대사상사론>(1987년)을 완성했다.

리쩌허우는 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중국 공산당과 갈등을 겪었다. 그는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를 무시하지 말고 귀 기울이라’는 청원서에 서명해 당국으로부터 시위 교사범으로 지목됐다. 이후 그는 중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했다.

그의 사상은 1996년 홍콩에서 출간된 전 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소장 류짜이푸(劉再復)와의 대담집 <고별혁명>에 잘 드러난다. 중국의 20세기는 신해혁명, 공산혁명, 문화혁명 등 큰 사건들을 겪으며 혁명만이 역사발전 계기라는 생각이 팽배했다. 두 사람은 이성을 통해 타인을 설득하고 인내하는 개량은 혁명보다 더 어렵다며, 21세기 중국의 길은 개량의 길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은 중국에서 금서가 돼 정식 출간되지 못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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