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세상에서 꿈을 키우다/ 1. 정글에 던져진 코린이] "코딩도 몰랐던 내가 스마트기기 개발하는 꿈꿔요"

안경애 2021. 11. 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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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션 아카데미' 벌써 2년
1∼5기 1400명 수강생 꿈의 도전
"첫 시험 패닉..외계어 같았는데
SW창업 도전하는 나도 안 믿겨"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에서는 동료 수강생들과 어떻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협업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사진은 라피신 과정에 참여 중인 김정욱(왼쪽부터), 안병준, 김민석, 이권희씨. 안경애기자

SW 세상에서 꿈을 키우다 // <1>SW 정글에 던져지다

"코딩 경험이 없어도 누구나 SW(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될 수 있다."

전공과 나이에 상관 없이 SW 개발자의 꿈을 이루도록 하겠다는 모토로 설립된 '이노베이션 아카데미'가 첫 교육생을 받은 지 만 2년을 앞뒀다. 과기정통부와 서울시가 협력해 설립한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는 교재와 교수를 없애고 동료간 협업, 인터넷 활용에 초점을 맞춘 실험적 교육방식이 특징이다. 2년 비학위 과정인 이곳에서는 1~5기 약 1400명이 실력을 키우고 있다.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며 꿈에 다가가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첫 과제를 받아들고 느낀 점은 혹독한 정글에 던져졌다는 거예요. 인터넷 검색과 동료라는 도구만 주고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거죠. 첫 시험에선 10분 만에 절반 이상이 교실에서 나가는데, '정말 심하구나'하고 생각했어요."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의 예비과정인 '라피신'에 참여 중인 이권희(20)씨는 "여긴 정말 컨셉이 확실한 프로그램이다. 한달 동안 라피신 과정에서는 절대로 하기 힘든 과제가 주어지는데, 포기하지 않고 그걸 해내는 나를 보면서 또 한번 놀란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조립하고 만지길 좋아해 자연스럽게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대학 1학년 휴학 중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에 도전했다. 개발자가 적성에 맞는지 제대로 테스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친해진 친구 3명과 함께 교육과정 참여를 위한 사전 온라인 테스트에 도전했다.

다행히 4명 모두 테스트를 통과해 약 300명의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5기생과 함께 10월초부터 라피신 과정을 시작했다. 고향도, 전공도 다 다른 김민석(26), 안병준(22), 김정욱(21)씨와 게임으로 친해졌지만 지금은 함께 SW 세상에 빠져있다. 김민석씨는 치의과대학 4학년을 다니며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를 병행하고 있다. 경영학과에서 SW융합학과로 전공을 바꾼 김정욱씨도 학업과 프로그램을 함께 소화하고 있다. 안병준씨는 전자공학과 3학년을 휴학한 상태다.

서울 개포동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에서 만난 이들은 프로그램 참여동기에 대해 하나 같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김정욱씨는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온라인 논리력 테스트가 재미있다는 지인의 얘기에 도전했는데 우연히 4명 다 합격했다. 한명이라도 입소 신청에 실패하거나 테스트에 탈락하면 버리고 가자고 했는데 다행히 모두 함께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7월 테스트 후 10월초 입소한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혹독한 라피신 과정이었다. 매일 주어지는 개인미션과 팀 프로젝트, 매주 금요일마다 치르는 시험, 주말 프로젝트 등 강도 높은 4주간 훈련을 통해 협업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과한 이들은 오는 15일 오리엔테이션을 갖고 본과정을 시작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주말도 없이 12시간 이상 같은 공간에 머무는 이들에게는 교재도 강사도 주어지지 않는다. '떨어뜨리기 위해 낸다'는 의도가 분명한 혹독한 과제 해결에 의지할 것은 컴퓨터와 인터넷, 동료 교육생뿐이다.

김민석씨는 "과제를 혼자 하기 어렵다 보니 애초에 협동이 전제된다. 어쩌면 협동을 통한 문제해결 방법을 익히는 게 라피신의 목적인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안병준씨는 "서로 경쟁하기도 하지만 동료가 뒤처지면 끌어주고 각자 잘 하는 것으로 다른 팀원에게 도움을 준다. 문제에 대해 누가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느냐가 성공을 좌우하는데, 모두가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궁하면 통한다고, 교육생 중 누가 실력자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이권희씨는 "까만 화면이 켜진 컴퓨터에서 특정 명령어를 수행하라는 게 첫 과제인데 절망적이었다. 맥과 리눅스를 써본 동료와 구글링밖에 도구가 없는데, 다행히 구글링으로 첫 과제를 통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멘붕의 순간'은 첫 시험이다. 일주일 단위로 치르는 시험은 한 문제를 맞혀야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식이다. 특히 첫 시험은 상당수가 컴퓨터 안에 숨겨진 문제조차 찾지 못해 교실 문을 나서야 했다. 10분간 문제를 못 찾으면 시험을 볼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안병준씨는 "첫 시험이 '헬'(지옥)이었다. 명령어 몇개를 쳐봐도 컴퓨터 안에 숨겨진 시험지를 찾을 수 없었다. 패닉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안씨는 결국 같은 처지의 교육생들과 함께 교실을 나가야 했다.

좋아하는 게임은커녕 고난의 SW 세상에 내던져졌지만 이들의 표정은 단단해 보였다.

김민석씨는 "SW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가끔 100점도 맞는다. 처음 외계어처럼 느껴지던 컴퓨터 언어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면서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과제가 주어지는데 사람들이 그걸 해낸다. 그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고 함께 성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시작할 때와 지금은 과제의 난이도는 물론 내 실력도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에는 4줄 정도 코딩했다면 지금은 하나당 150줄 짜리 파일 2개를 합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밝혔다. "혼자 했다면 절대 못 했을 것"이라는 그는 "라피신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좀더 SW를 공부하고 싶다. 전공과 결합해 시너지가 나는 분야를 탐색할 기회를 갖게 돼 좋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동료와 경쟁자는 반대말이 아님을 깨달았다"는 안병준 씨는 "이곳에서 컴퓨터 언어를 제대로 깊이 있게 파헤치고, 내가 개발자의 길을 걸을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평생 재미있는 것을 하고 살고 싶은데, 전기전자와 SW가 나에게는 그런 것"이라며 "복학 후에도 이곳을 병행하며, 하드웨어와 SW를 융합한 영역에서 창업에 도전하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힘든 사춘기를 보내고 특성화고를 나와 대학에 입학한 이권희씨는 "공장에서 단순작업을 하고 정해진 버튼을 누르는 '버튼맨'보다는 더 의미 있는 삶을 보내고 싶었다"면서 "스스로의 능력이 의심돼 찾은 이곳에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내가 개발한 SW가 담긴 스마트기기를 개발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김정욱씨는 "SW가 적성에 맞고 개발자의 삶이 잘 맞을 지 시험해보고 싶어서 이곳에 왔고, 한달간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과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면서 즐거웠다. 내가 얻고 싶었던 답과 궁금해했던 길을 이곳의 모든 이들이 제시해 주는 거 같다. 본과정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홍경구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매니저는 "라피신은 프랑스어로 '수영장'인데, 물에 던져 스스로 헤엄쳐 나오는 사람만 입학시키겠다는 의미"라면서 "교육생들이 고난도 과제를 해내면서 한달이란 짧은 기간에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고 밝혔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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