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교구 사제, 수도회 사제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21. 11. 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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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8일 정순택 대주교의 서울대교구장 임명 후 감사미사에서 손을 맞잡은 염수정 추기경(왼쪽)과 정순택 대주교. 염 추기경은 서울대교구 출신, 정 대주교는 수도회(가르멜회) 출신이다. /가톨릭평화신문

지난 10월 28일 천주교 새 서울대교구장에 정순택(60) 베드로 대주교가 임명됐습니다. 당시 보도에 ‘최초의 수도회 출신 서울대교구장’이란 설명이 있었습니다. 정 대주교는 가르멜수도회 소속이거든요. ‘천주교 신부면 다 같은 신부 아닌가?’라고 생각한 분들도 계셨을 겁니다.

천주교 사제는 크게 교구(敎區) 사제와 수도회 사제로 구분됩니다. 교구 사제는 교구가 양성하고 교구에 소속된 사제입니다. 천주교는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 각 지역별로 설정된 교구가 자율권을 가지고 운영하는 ‘교구 자치제’의 성격도 강합니다. 한국만 해도 김수환 정진석 염수정 추기경이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얼굴 역할을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서울대교구장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수도회는 교구와는 또 다른 조직입니다.

신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와 새 문장. 문장 속의 모자색깔이 주교 시절엔 빨간색이었는데 갈색으로 바뀌었다. 서울대교구는 홈페이지를 통해 갈색의 의미를 "겸손과 가난을 상징 하는 ‘땅의 색’이기도 하며, 탁발 수도회의 전통적인 색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정 대주교가 수도회 출신이란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서울대교구

수도회 소속 사제는 문자 그대로 수도회에 속한 사제입니다. 교구 사제들이 본당(성당) 주임신부, 보좌신부를 맡아 일반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이끈다면, 수도회 사제들은 자신들의 수도생활이 우선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 드리지요. 정순택 대주교의 전임 서울대교구장인 노기남 김수환 정진석 염수정 추기경은 모두 교구 사제였습니다. 그래서 정 대주교가 수도회 출신으로는 첫 서울대교구장이라고 하는 겁니다. 정 대주교가 수도회 출신 첫 주교는 아닙니다. 이한택 전 의정부교구장도 예수회 출신으로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를 거쳐 의정부교구장을 지냈습니다. 또 유수일 전 군종교구장도 프란치스코회 출신이지요. 바티칸에선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그 전임인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은 교구 출신이고 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도회(예수회) 출신입니다. 예수회 출신으론 첫 교황이기도 하지요.

수도회는 가톨릭에서 ‘교황청이나 교구장의 인가를 받은 회헌에 따라 공동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의 단체’라고 정의(定義)합니다. 일반적으로 기원후 3~4세기 무렵 이스라엘과 이집트 등의 사막과 광야에서 독신-금욕생활을 하면서 영성을 수련한 은수자(隱修者)들을 그 기원으로 보지요. 도시가 아닌 광야를 혼자 떠돌던 수도자들이 본격적으로 수도회를 갖추고 공동 수도생활을 시작한 것은 6세기 전반 활동했던 베네딕도 성인 때부터로 봅니다. 이탈리아 출신인 베네딕도 성인은 수비아코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수도자들과 공동생활을 하고 여러 규칙도 만들었지요. 초기엔 수도자들은 사제가 아니었습니다. 평신도로서 수도생활에 전념했지요. 당시엔 사제라 하면 교구 소속 사제들만 있었겠지요. 그러나 점차 수도원이 인재의 산실이 되면서 수도자들 가운데에서도 사제가 되는 이가 늘었다고 합니다. 또한 매일 미사를 집전할 사제가 필요한 것도 한 이유이겠지요. 미사 집전은 사제만 할 수 있거든요.

2013년 12월 프란치스코 교황(오른쪽)이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손을 맞잡고 대화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도회(예수회) 출신이며 베네딕토 전 교황은 독일 뮌헨-프라이징 대교구 출신이다. AP/연합뉴스

이후 여러 수도회가 생겼습니다.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가르멜회, 예수회 등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예수회는 특히 루터의 종교개혁에 맞서 가톨릭을 수호하면서 가톨릭의 내부 개혁과 해외 선교에 앞장섰습니다. 영화 ‘미션’에서 원주민들에게 선교하는 사제들이 예수회 출신입니다. 일본과 중국 선교에도 나섰지요. 예수회 창립자 중 한 명인 하비에르 신부는 일본 선교에 삶을 바쳤고, 중국에 서양의 과학기술을 전한 마테오 리치도 예수회 선교사였습니다. 2020년 현재 한국에는 남자수도회 48개에 1626명, 여자수도회 121개에 1만 152명의 수도자(사제, 수사, 수녀 포함)가 있습니다(주교회의 통계).

한국 천주교도 수도회와 인연이 깊습니다. 베네딕도회는 현재의 북한 함경도 지역과 북간도 지역 선교를 담당하다가 북한이 공산화된 후엔 경북 왜관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지요. 교육에 관심이 많은 예수회는 한국에 서강대를 설립하기도 했지요.

앞에서 사제는 크게 교구 사제와 수도회 사제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선교회도 사제를 양성합니다. 선교회는 선교를 목적으로 세워졌지요. 외국에 본거지를 둔 선교회로는 파리외방전교회, 메리놀회, 골롬반회 등이 유명하지요. 파리외방전교회는 한국에 정식 가톨릭 교구가 생기기 이전부터 진출해 교구 제도를 정착시킨 선교회입니다. 한국인 노기남 대주교가 서울대교구장이 되기 전까지는 파리외방전교회 출신 사제가 교구장을 맡았었죠. 메리놀회는 평안도 지역을 선교지역으로 담당했습니다. 역시 분단 후에는 청주교구를 맡아 정진석 추기경이 청주교구장을 맡기 전까지 이 지역을 책임졌지요. 골롬반회는 서울, 강원도, 호남 지역에 아일랜드 출신 선교사를 많이 파견했고 광주대교구, 춘천교구를 맡기도 했습니다.

한국에 진출한 선교회들의 특징은 ‘방인(邦人·현지인) 사제 양성’에 힘썼다는 점입니다. 자신들의 선교회 사제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신자를 돌볼 사제 양성이 먼저였다는 것이지요. 교구 사제입니다. 이들은 한국인 사제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교구를 차례대로 넘겼습니다. 한국에서 외국 선교회 사제가 마지막으로 교구장직을 넘긴 것은 인천교구였습니다. 지난 1999년 메리놀회 나길모 주교가 최기산 주교에게 교구장직을 인계했지요.

이번에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된 정순택 대주교는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나 대학생(서울대 공대) 시절 강렬한 신앙체험을 하고 성직을 결심하게 됐다고 합니다. 대학 졸업 후 가르멜 영성서적을 읽다가 가르멜회 입회를 결심하고 1988년 첫 서원(誓願), 1992년 종신서원을 하고 1992년 가르멜회 인천수도원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이후 가르멜회 내에서 활동하다 로마 총본부에서 최고평의원으로 동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담당 부총장을 지내다 2013년 12월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습니다.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 창립자인 예수의 성녀 데레사(왼쪽)와 십자가의 성 요한. 스페인 아빌라 출신인 데레사 성녀는 십자가의 성 요한 성인과 협력해 기존 가르멜수도회를 개혁해 오늘의 가르멜수도회로 변신시켰다. /가르멜수도회 홈페이지

정순택 대주교를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할 당시 교황이 현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8년여 후인 2021년 정 주교를 다시 서울대교구장 대주교로 임명한 이도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수도회 출신 교황이 수도회 출신 사제를 서울대교구장에 임명한 것입니다. 예수회 출신 첫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에 새 활력을 불어넣고 있듯이 수도회 출신 첫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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