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동물농장' 같은 세상 되풀이 안 되려면

이강은 2021. 11. 2.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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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마다 맹목 지지층 등에 업고
집권세력 기득권 공고화에 집착
내로남불·독단적인 국정운영 땐
여야 떠나 매섭게 꾸짖고 심판해야

얼마 전 조지 오웰(1903∼1950)의 <동물농장>이 눈에 띄어 집어 들었다. 고등학생 때 처음 읽었으니 거의 30년 만이다. 고전의 힘을 새삼 다시 느끼게 해준 이 책은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소련(소비에트연방)의 독재자 스탈린과 전체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우화소설이다. 20세기 최고의 정치풍자 소설로 평가받는다. 오웰은 우크라이나판 서문에서 “소비에트 정권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도록 소비에트 신화를 한번 폭로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최초 사회주의공화국인 소련에 대해 “진정한 사회주의로 발전하기보다 지배자들이 어떤 권력층보다 더 확고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급사회로 변모하는 분명한 조짐을 보았다”고 비판하면서다.

이 소설이 대단한 건 스탈린과 전체주의 풍자를 넘어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 지배계급의 본성을 예리하게 꼬집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회·민주·공산·자본주의 등 어떤 정치·사회체제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집권세력이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권력을 올바로 사용하느냐에 있다는 게 작품의 메시지로 읽혔다. 혁명이든 민주적 선거든 권력을 잡은 세력이 자신과 자기 편의 기득권 공고화에 집착할 경우 대다수 국민의 고단한 삶은 그대로이거나 더 나빠질 뿐이라고 말이다.
이강은 사회부장
어쨌거나 이번에는 30년 전과 달리 소설 속 인물 중 착실한 성격과 엄청난 힘을 지녀 존경받는 말 ‘복서’와 우둔한 양떼가 눈에 들어왔다. 고교생 시절엔 돼지들의 우두머리인 수퇘지 ‘나폴레옹’이 감언이설과 선전에 능한 식용 돼지 ‘스퀼러’와 자신이 키운 사나운 개들을 데리고 어떻게 동물농장을 장악하며 독재자가 되는지를 주목했던 것 같다. 현실 세계로 치면, 권력자가 군경과 관제 언론을 앞세워 국민을 억압하고 호도하는 격이다.

그런데 가만 보니 나폴레옹과 친위세력이 마음껏 횡포를 부릴 수 있었던 배경엔 복서와 양떼의 역할이 컸다. 나폴레옹 세력이 눈치를 살필 정도로 강한 복서와 소수 동물의 비판 목소리를 스퀼러가 시킨 대로 합창하면서 차단해버리는 양떼가 맹종했기에 그런 횡포가 가능했던 것이다. 심지어 복서는 직접 목격한 사실과 다른 거짓말을 스퀼러가 하는데도 ‘나폴레옹의 말’이란 얘기에 “나폴레옹 동지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건 틀림없이 옳습니다”라고 할 정도다.

반란으로 농장을 차지한 뒤 풍요로운 삶을 꿈꿨던 동물들은 결국 돼지 무리가 ‘처단해야 할 적’이라던 사람처럼 행동하며 특권을 누리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뿐이다. 급기야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고 주장한 돼지들에게 인간이 농장주였던 때보다 더한 착취를 당하다 눈을 감는다. 오늘날 많은 나라가 이런 동물농장 같은 사회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집권세력이 강성·맹목 지지층의 지원을 등에 업고 폭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을 대통령 탓으로 돌리며 여야에 번갈아 정권을 맡겨보지만 민생의 주름은 펴지기보다 깊어지기 일쑤다. ‘헬조선’과 ‘N포세대’, ‘빚투’, ‘영끌’ 등 우울한 신조어만 풍년이다.

‘촛불혁명 정권’을 자임한 문재인·더불어민주당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집권층과 자산가들의 배만 더 살찌운 꼴이 됐다. 예컨대 정부가 공언한 집값·일자리 안정만 해도 집값과 대학 졸업자 등의 비정규직이 역대 최대로 치솟으며 물건너갔다. 서민들의 내집 마련이나 정규직 취업은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가 돼버렸다.

어느덧 4개월 남은 대통령 선거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후보 중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데 유력 (경선)후보들이나 양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말이 아닌 탓이다. 적대적 공생관계인 두 당이 ‘승자독식’의 선거를 통해 번갈아 집권하면서 기득권 강화에 집착한 것과 무관치 않다. 결국 동물농장 같은 세상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양당의 열렬 지지층을 포함한 국민 손에 달렸다. 야당과 여당일 때 180도 다른 ‘내로남불’이나 기득권 수호 행태, 무능하거나 독단적인 국정운영 등 잘못한 부분은 매섭게 꾸짖고 기억했다가 각종 선거에서 심판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동물농장의 복서나 양떼가 되버리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이강은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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