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역설

- 2021. 11. 2.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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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 더 악화.. 초단기 일자리만 늘어
정부가 일자리 창출 주도 착각부터 버려야

정부는 고용이 코로나19 이전의 99.8%까지 회복됐다고 자랑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청년층 실제 실업률은 4명 중 1명으로 악화했고, 16시간 미만 초단시간이나 6개월짜리 초단기간 일자리만 늘었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제로로 만든다고 했지만 민간부문은 비정규직이 늘어 비중이 40% 가까이 올라갔다.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자의 취업난이 더 심각해져 비정규직 가운데 대졸 이상의 비중이 10명 중 3명을 훌쩍 넘을 정도로 증가했다. 일자리가 이렇게 악화돼도 좋아졌다고 하니 정부가 일자리정책을 바꿀 리 없다. 그러자 일자리를 더 악화시킬 끔찍한 공약이 나오고 있다. 집권 여당의 대선 후보는 기본소득으로 주목을 끌더니 이제 주4일제에다 자영업 총량제를 들고 나온다.
김태기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 전 단국대 교수
사람중심 경제를 표방했지만 청년의 삶은 참담해졌다. 관련 통계를 종합해보면, 2030 청년은 사교육을 받으며 대학에 입학했지만 졸업해도 취업이 안 되고, 취업을 해도 저임금 일자리를 마주했다. 이러다보니 30만명 넘는 청년이 합격률 2%의 로또와 같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일부는 취업 대신 아예 가게를 차렸지만 파리만 날리고 빚에 눌렸다. 노동으로 돈을 벌 희망이 보아지 않자 이들은 주식은 물론 코인에 투자하고 부동산도 기웃거렸다. 이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과 ‘빚투’(빚내서 투자) 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까지 감수해야 했다. 2030은 경제적으로 곯고 결혼은 엄두도 내기 힘들어, 결국 우울증 환자가 가장 많은 계층이자 은행의 대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계층으로 됐다.

청년취업 잔혹사는 경제의 기본원리를 무시한 정책에 기인한다. 정부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빠져 법령과 예산 및 재정으로 칼을 휘둘렀다. 덕분에 소수의 기득권자는 임금이 올라가고 고용을 보호받았지만, 기업은 억눌려 청년의 취업 문이 막혔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악화했다. 소득주도성장으로 포장한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은 아르바이트마저 사라지고 소득은 줄게 만들었다. 공공부문의 고용 확대와 비정규직 제로는 민간부문에 부담을 주어 제조업과 서비스업 일자리는 감소하고 중소기업 일자리는 비정규직화되게 했다. 노동기본권 강화를 노동존중 사회라고 선전했지만 노동조합의 특권 강화에 지나지 않아, 자본이 대거 유출되면서 청년이 선호하는 대기업 일자리는 씨가 마르게 됐다.

노동시장이 정상이라면 기업은 신지식이 많고 인건비가 싼 청년을 선호한다. 기술 변화로 산업구조가 바뀌고 노동력 이동이 많을 때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가 산업화 이후 졸업과 함께 취업이 될 정도로 청년실업률이 사실상 제로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전투적으로 바뀌고 노동법이 기득권자를 과보호하는 데 치우치면서 청년고용이 악화했다. 미국은 예전부터 노동시장이 역동적이라 청년실업률이 높지 않았다. 독일과 스웨덴 등 북유럽은 한때 청년실업이 심각했지만 노동시장을 역동적으로 만들어 해결했다. 한국과 달리 노동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줄이고, 공공부문은 민영화하고 민간 기업처럼 임금 및 고용 직무와 성과에 따라 결정되도록 개혁했다.

우리나라와 외국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청년취업 잔혹사를 끝내는 길이 멀리 있지 않다. 당장 해야 할 일은 일자리 문제의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정부가 일자리를 만든다는 착각, 정부가 기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 일자리의 질이 올라간다는 착각, 노동조합이 힘을 남용하는데도 불평등을 해결한다는 착각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깨는 개혁에 힘을 쏟아야 한다. 정부는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노동시장을 역동적으로 만들어 기업의 이윤이 늘면서 임금이 올라가고 일하는 데 필요한 스킬이 풍부해져 근로자 몫이 늘게 해야 한다. 또 노동조합이 특권을 내려놓아 근로자 사이에 몫이 공정하게 배분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2030 청년은 ‘쿨’하다. 이들은 선심 쓰기 정책이 아니라 공정경쟁을 보장하는 정책을 요구한다. 청년취업 잔혹사를 끝내야 한다.

김태기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 전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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