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에 걸려온 "배달되나요?".. 떨리던 목소리, 경찰은 직감했다

최혜승 기자 2021. 11. 2. 22:3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찰청

“저 치킨을 시키려고 하는데요...”

작년 12월20일 새벽 경기남부경찰청 112치안종합실. 수화기를 집어든 남상윤 경사에게 신고자가 겨우 입을 떼며 이렇게 말했다. 수화기 너머 여성은 떨리는 목소리였다. 112상황실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 장난전화가 쏟아진다. 남 경사는 그러나 이것이 긴급 상황이라는 걸 직감했다.

“어디로 가져다드릴까요? 누가 드실 건가요?” 남 경사가 답했다. “옆에 남자친구가 있나요?”라고도 물었다. 여성은 “남편이 먹고 싶다고 한다”고 답했다. 목소리엔 울음이 섞여 있었다. 남 경사는 여성이 있는 곳 주소를 확인한 뒤 전화를 끊고, 현장에 경찰관이 출동하도록 조치했다.

남 경사의 직감은 맞아떨어졌다. 도착한 현장에선 술에 취한 남성이 흉기를 들고 “아버지를 찌르겠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신고 여성 남편이었다. 신고자는 흥분한 남편을 진정시키기 위해 치킨 주문 시늉을 하며 경찰에 신고했던 것이다. 남편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 같은 일화는 경찰청이 창설 64주년을 맞아 발간한 112 우수사례 모음집 ‘112 소리를 보는 사람들’에 담겼다. 경찰은 2일 모음집에 담긴 사례 몇 가지를 소개했다.

◇'1원 송금’이 구한 생명

경찰관이 순발력을 발휘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을 구한 사례도 사례집에 담겼다. 강서경찰서 설태식 경위는 자살이 의심된다는 신고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신고자는 구조가 필요한 사람의 번호만 전달한 채 전화를 끊었다. 설 경위가 자살 시도 의심자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전화번호를 저장한 후 카카오톡에 친구추가를 했지만, 그의 이름은 뜨지 않았다.

설 경위가 떠올린 건 ‘모바일 송금’이었다. 설 경위가 자살 시도 의심자에게 카카오페이로 1원을 송금하자 거래 내역에 이름 석 자가 떴다. 설 경위는 이렇게 알아낸 이름과 전화번호로 그의 위치를 알아내 출동했다. 도착한 현장에선 만취 상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다 실패한 시민을 발견했다. 이 사람은 바닥에 떨어져 전신 통증으로 움직이지 못 하고 있었다. 경찰은 발견 즉시 병원으로 이송해 그의 목숨을 살렸다.

◇모스부호처럼 신고자와 소통하기도

경상남도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의 이경진 경위는 ‘침묵의 신고 전화’를 받았다. 이 경위는 당황하지 않고 “경찰 도움이 필요하시면 전화 버튼을 눌러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짧지만 또렷한 버튼음이 들렸다.

신고자가 말 못 할 상황에 놓여있단 것을 눈치챈 이 경위는 그의 주소를 물으며 “버튼을 눌러달라”고 했다. 이 경위는 키패드의 버튼음에 귀 기울였다. 그는 버튼음 만으로 신고자가 사는 아파트 동·호수를 알아내 현장에 출동했다. 도착한 신고자의 집에선, 남편이 아내에게 망치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자녀 훈육 문제로 다퉜다고 한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신고를 많이 받다 보면 ‘장난 전화겠지’하고 넘길 수도 있는데 사소한 음성을 놓치지 않고 기지를 발휘해 모든 신고에 최선을 다해준 여러분이 자랑스럽고 든든하다”고 현장 경찰관들을 격려했다.

경찰에 따르면 112는 ‘일일이 알린다’라는 뜻에서 유래했으며, 지난 1957년 처음 도입됐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