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일제 대선 의제화..'장시간 노동국가' 벗어날 개혁 실험, 첫발 내딛나

이혜리·강한들 기자 2021. 11. 2.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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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노동시간 단축에 임금도 하락할 우려…단순 접근 어려워
사회보장제 확충과 산업·경제정책 등 함께 논의할 필요성
아이슬란드·스페인 시행 중…국내선 배민 등도 변형 도입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2일 국회에서 열린 플랫폼기업 독과점 횡포 피해당사자 증언대회에서 참가자들과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 4일제’가 대선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1호 공약으로 내세우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공감하는 의사를 드러내면서다. 한국이 최악의 장시간 노동 국가로 꼽히는 상황에서 주 4일제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사회적 논의의 발판이 될지 주목된다.

심 후보는 지난 1일 첫 정책 관련 현장 행보로 전국금융노조 IBK기업은행지부 사무실을 찾았다. 기업은행은 주 4일제 도입을 추진 중인 곳이다. 심 후보가 말하는 주 4일제는 일주일에 32시간을 일하는 개념이다. 이 후보도 지난달 28일 “4차 산업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주 4일 근무제를 논의할 때가 왔다”고 했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19년 기준 1967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두 번째로 길다. OECD 평균(1726시간)보다 연간 241시간을 더 일한다. 주 4일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 분위기 속에서 나왔다.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계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해왔지만 그 방식으로 주 4일제가 적절한지에 관해선 논의된 게 많지 않다. 특히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임금도 함께 떨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시급으로 임금을 받는 노동자나 비정규직·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 등은 적용에서 배제돼 노동시간 양극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노동시간 단축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사회보장제도 확충과 산업·경제정책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가야 하는 것은 맞지만 초단시간, 시간제 노동자가 많아지고 있는 풍조 속에서 일할 시간이 부족한 사람과, 이미 오래 일해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사람의 간격이 생기고 있다”며 “긍정적인 일자리 나누기와 보편적인 적용을 위한 과제들을 잘 설계해 같이 추진돼야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노동시간 단축만 할 경우 임금이 하락하는 노동자가 많아질 수 있다”며 “성과와 수당 중심의 기형적인 임금체계 개편, 교육·의료·주거 등 복지 확대 등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도 “주 52시간제도 못 지키는 사업장이 많고, 노동시간 양극화 문제도 먼저 해소돼야 한다”며 “노동시장 단축이 삶의 질 개선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임금 보전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비해 심 후보는 평등수당 도입과 주 16시간의 최소 노동시간 보장제를 함께 주장하고 있다.

노동시간을 어떻게 단축할 것인지를 사회적으로 논의하는 ‘첫발’로써 주 4일제를 시도해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정한 영역에서 부분적으로 적용하면서 전 사회로 확장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아주 먼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슬란드와 스페인은 국가 차원에서 주 4일제를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4.5일제를 시행하고, 카카오게임즈와 전자상거래 플랫폼 카페24 등 회사들이 격주 휴무를 하는 방식으로 주 4일제를 운용하고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주 4일제의 방식도 여러 가지가 있고, 우리도 외국처럼 실험을 하면서 장점과 단점을 살펴볼 수 있다”며 “생명안전 업무, 야간근무를 많이 해서 과로사 우려가 있는 업무, 산재 위험이 많은 업무 등과 같은 영역에서 먼저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연구위원 분석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의 경우 주 4일제 실험 후 노동자들이 겪던 번아웃 증후군 등 신체·정신적 고통이 해소되고, 남는 시간을 가족과 더 많이 보내면서 업무 생산성은 오히려 증가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계 단체들은 아직 주 4일제에 대해 명시적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주 52시간제 등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기업의 인력 운용이 힘들고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부정적 입장을 피력해왔다. 대신 기업이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혜리·강한들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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