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권모 칼럼]'이재명 정부' 대 '문재명'

양권모 편집인 2021. 11. 2.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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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이재명 정부’를 전면에 내걸었다. 정권이 다른 정당으로 넘어가는 정권교체를 표방하기는 거시기했는지, “정권교체인지는 모르겠지만 권력교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주석을 달았다. 대선 후보 수락연설(10월10일)에서 시종 충일한 정권 ‘계승’에 방점을 찍고, 청와대 회동(10월26일)에서 “생각이 너무 일치한다”며 문재인 대통령과의 동일체성을 강조했던 것에 비춰보면 어찌 되었든 전환이다.

양권모 편집인

사실 대장동 사태와 경선 후유증 등에 휘말린 이재명 후보가 섣불리 차별화의 각을 세우기는 어려웠을 터이다. 그래도 뭐가 달라졌을까. 경선 이후 컨벤션 효과도 누리지 못하고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은 답보 상태다. 대장동 사태의 여파가 컸지만, 문재인 정부와 대비되는 ‘이재명’의 차별성이 빛바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30%대 박스권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정권교체 여론은 50%를 넘어 60%에 육박하고 있다. 정권 ‘계승’이냐 ‘교체’냐의 이분법적 프레임을 방치해선 승부가 버거운 상황이다.

실제 4·7 재·보선에서 확인된 정권심판론의 우위 속에서도 ‘이재명 대세론’이 흔들리지 않은 건 정권교체 민심을 상당히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유권자 중 20%가 ‘이재명 지지’라는 분석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는 채찍을 들지만 민주당 정권 혹은 진보 정권을 포기할 수 없는 유권자들이 가장 차별적인 이재명 후보에게 쏠린 결과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거리감, 비주류 아웃사이더, 지방행정에서 보인 강한 추진력과 성과 혹은 그런 ‘이미지’가 변화를 추구하는 민심과 닿아 있다.

대장동 사태가 그 물줄기를 흔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불공정과 부동산 문제가 소환됐고. 이재명 후보도 엮였다. 추진력과 유능함이란 브랜드에도 의문부호가 찍혔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패가 민심을 악화시킨 핵심이다. 대장동 사태는 이재명 후보로 하여금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패와 확실히 선을 긋고 나서기에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이게 ‘이재명 당선=정권교체’로 받아들이는 중도층에 벽을 만들었다. 정권교체 여론이 50%를 넘는 상황에서 치명적인 흐름이다. ‘이재명 정부’를 공식화한 선대위 출범식(2일)에서 이재명 후보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문제에 직접 사과한 것도 최악의 부동산 민심을 붙잡지 않고는 대선 승리가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재명 정부’ 깃발은 정권교체 프레임을 돌파하기 위한 고육지책 아니면 승부수일 터이다. 이제 “이재명 고유의 캐릭터와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가겠다”는 것이다. 정책이든 노선이든 다름과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면 정권교체 프레임을 벗어나기 힘들다. ‘공정과 성장’으로 집약한 이재명의 시대정신을 한층 벼리는 수밖에 없다.

민주화 이후 3차례(김영삼, 노무현, 박근혜) 이뤄진 정권 재창출 역사에서 공식이 하나 있다. 현직 대통령과 동일한 정파에서 정권 재창출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정권 재창출을 선택하면서도 변화를 중시했다는 얘기다.

2002년 대선에서 비주류였던 노무현 여당 후보는 ‘사람 사는 세상’을 시대정신으로 지방분권, 특권 타파, 권위주의 청산 등을 내세워 정권교체론의 벽을 넘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도 정권교체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박근혜 여당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 등 본질적인 정책 전환을 통해 보수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시장만능과 개발의 이명박 정부와 대척에 가까운 차별화를 통해 정권교체론을 극복한 것이다.

그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내세운 민주당은 높은 정권교체 여론에 고무돼 ‘이명박근혜’ 심판만 외치다 결국 졌다. 중도층을 중심으로 ‘박근혜 정부=정권교체’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이명박근혜’의 고리는 무력해진다.

정권교체론 빼고는 기댈 게 없는 윤석열 국민의힘 경선 후보가 “비상식과 불공정, 불의와 위선 상징인 문(재인)-(이)재명 세력과 선명히 투쟁하겠다”며 ‘문재명’을 호명했다. ‘이명박근혜’의 국민의힘 버전이다. ‘문재명’의 고리를 끊는 것도 이재명 후보의 몫이다. “이재명이 당선되는 것도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는 것”(송영길 민주당 대표)은 말장난이 아니라 그에 걸맞는 비전과 정책으로 보여줄 때야 가능하다. 정권교체는 아니어도 ‘이재명 정부=변화’를 각인시키지 못하면 거세지는 정권교체론의 파고를 넘기 힘들다.

양권모 편집인 sul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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