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주현영과 스타벅스 트럭 시위

이재훈 2021. 11. 2. 18: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프리즘]

코미디쇼 <에스엔엘(SNL) 코리아> 유튜브 영상 갈무리

[한겨레 프리즘] 이재훈ㅣ사회정책팀장

‘인턴 기자’ 주현영은 확실히 진화했다. 방송 초반 안영미 앵커의 지적에 울먹이며 퇴장하는 모습을 두고 20대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평이 나왔지만, 이내 그 시선은 사안을 납작하게 보는 해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반응은 사회 초년생의 미숙함을 점점 극복해가는 성장 서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 됐다. 이 평가대로 조금씩 능숙해지던 주현영은 급기야 대통령 선거 후보들을 릴레이 인터뷰할 정도로 노련해졌다.

하지만 주현영의 성장이나 노련함과 상관없는 것이 하나 있다. 어쨌든 주현영은 변함없이 ‘인턴’ 신분이라는 점이다. 나는 이 점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 주현영의 화법과 표정, 몸짓만큼이나 정확하게 사회 초년생들의 현실을 재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업은 스펙뿐만 아니라 업무 능력까지 갖춘 취업 준비생을 필요로 한다. 채용과 교육 비용을 줄이기 위해 ‘경력 있는 신입사원’을 뽑겠다고 하거나 관련 업계 인턴 경력을 요구한다. 그래서일까. 요즘에는 노동자들마저 후임 교육을 통한 재생산이나 회사의 부당한 조처에 맞서는 조직적 저항보다 생존을 위한 각자도생에 몰입하게 됐다. 이런 사회에서 인턴 주현영의 미래는 <미생>의 장그래처럼 실컷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거나 혹은 비정규직으로 한 단계 ‘진급’하는 정도일 것이다.

스타벅스 매장 노동자들이 지난달 7일 트럭시위를 벌였다. 빈번한 이벤트로 인해 극심해진 노동강도가 도화선이 됐다.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앱을 통해 돈을 모아 트럭을 빌리고, 전광판 메시지로 인력 충원과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그런데 트럭시위를 주도한 ‘총대’라는 인물이 블라인드에 이런 글을 남겼다.

‘우리는 몇달 일하려고 입사한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다. 연령은 20대 중반~50대까지 다양하고, 10년 이상 근속한 점장들, 부점장들이 대다수’라며 ‘‘바리스타 엔(N)개월 내 퇴사율’이 점장의 인사 고과에 반영될 정도로 초기 퇴사율이 높다. 매장에 일할 사람이 없다. 지원하는 사람도 없다. 퇴사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다. 매장 업무도 타이트한데 신입 교육에 인건비 써가며 가르쳐놓으면 다 퇴사해버린다. 그게 우리 파트너의 잘못인가?’라는 호소였다.

스타벅스 매장 노동자들은 같은 직무를 하면서도 하루 5시간 혹은 7시간 일하는 바리스타와 슈퍼바이저, 8시간 일하는 부점장과 점장으로 나뉜다. 바리스타와 슈퍼바이저는 스타벅스에 고용된 1만8천여명 가운데 78%(1만4천여명)를 차지한다. 이들은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시급 9200원을 받는다. 반면 부점장과 점장은 연봉 계약을 하고, 사내 복지도 달리 받는다.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점장과 부점장들이 스타벅스코리아를 ‘우리’라고 칭하며 ‘노조 없이도 22년간 식음료 업계를 이끌며 파트너들에게 애사심과 자긍심을 심어준 기업’(블라인드 글)이라고 말할 때, 단시간 노동을 하며 월 120만원 정도의 기본급을 받는 바리스타들은 강도 높은 업무에 시달리다 ‘초기에 퇴사’하거나 혹은 월급을 조금 더 받는 슈퍼바이저로 한 단계 ‘진급’한다.

이렇게 파편화한 노동자들을 두고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을 결성할 것을 권한다”며 “노조를 결성해야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사안을 납작하게 만든 논평을 냈다. 주현영 같은 인턴들이나 스타벅스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건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지원하겠다”는 전제 없이, “제1노총이 무조건 당신들의 노동권을 위해 앞장서서 싸우겠다”는 말일 것이다. 회사가 필요한 시간에만 과중한 노동을 시키면서도 임금은 적게 줄 수 있는 시간선택제 유연근로를 활용하는 탓에 바리스타와 슈퍼바이저가 ‘초기에 퇴사’하고 점장과 부점장을 비롯한 전체 스타벅스 노동자가 함께 힘들어지는 것이라고 설득하는 말일 것이다. 그것이 노조에 대한 혐오와 냉소가 판치는 이 사회를 다시 꿈틀거리게 할 수 있는 작은 걸음 아닐까.

na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