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니 콩쿠르 1위' 박재홍 "온전히 몰입해 행복했던 무대..나만의 음악 언어 찾아나설 것" [인터뷰]

선명수 기자 2021. 11. 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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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지난 1일 서울 정동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인터뷰했다. 지난 9월 세계적인 피아노 콩쿠르인 부소니 콩쿠르에서 우승을 비롯해 ‘5관왕’을 차지한 그는 오는 19일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리는 ‘2021 경기피아노페스티벌’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이준헌 기자


이탈리아 작곡가 페루초 부소니(1866~1924)를 기리기 위해 1949년 시작된 부소니 콩쿠르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외르크 데무스, 마르타 아르헤리치, 게릭 올슨 등 걸출한 피아니스트들을 배출한 이 콩쿠르는 올해 63회에 이르기까지 절반 가까이(총 31회) 우승자를 배출하지 않고 ‘1위 없는 2위’를 발표했다. 그만큼 심사가 엄격하다. 지난 9월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피아니스트 박재홍(22)이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우승 외에도 작품연주상, 실내악연주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해 5관왕에 올랐다.

지난 1일 서울 정동에서 만난 박재홍은 “행복한 순간이 정말 많았던 무대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9월3일 결선 무대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40여분간 격정적 연주를 마친 뒤 그의 표정은 유독 밝아 보였다. “파이널 무대가 오케스트라 협연이었는데, 리허설 시간이 제한적이었어요. 라흐마니노프 3번은 리허설 한두 번으로 완벽하게 맞을 수 있는 곡이 아니거든요. 오케스트라에게도, 솔리스트에게도 까다롭죠. 그래서 걱정하며 무대에 올랐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지휘자 선생님, 오케스트라와 교감이 정말 잘됐던 것 같아요. 무대를 마쳤을 때는 연주를 잘했다는 안도감보다, 행복감이 들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연주자로서 흔치는 않은데, 저는 그걸 콩쿠르 결선에서 느꼈으니 너무 감사하죠.”

그는 2년 전에도 이 콩쿠르에 도전했지만 그때는 고배를 마셨다. 이번에는 “대회라기보다는 연주한다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한다. “콩쿠르지만 이번엔 수상이라는,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욕망을 배제하려고 애를 썼던 것 같아요. 이번엔 정말 음악을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연주에 담고 싶었고, 여한없이 풀어내려 했던 제 음악적 이야기들을 심사위원들이 좋게 들어주신 것 같아요.”

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인 박재홍은 이 학교 총장인 김대진 교수를 사사했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김 선생님께 배웠는데, 처음으로 효자 노릇을 한 것 같아 우승이 더 값지다”라며 “마지막 리허설 녹음까지 계속해서 코멘트를 해주셨다. 선생님 덕분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콩쿠르 이후 연주 요청이 쇄도해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까지 유럽 연주 일정을 소화했고, 오는 19일 경기아트센터가 주최하는 경기 피아노 페스티벌에서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와 베토벤 하머클라비어 등 콩쿠르 프로그램으로 관객과 만난다. 그는 “제가 너무 좋아하고, 하나하나 매력 넘치는 곡들”이라며 “특히 하머클라비어는 말로 표현이 안 될 만큼 위대한 피아노 소나타라고 생각한다. 잘 준비해서 관객들께도 (콩쿠르 분위기를) 라이브로 들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지난 1일 서울 정동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인터뷰했다. 지난 9월 세계적인 피아노 콩쿠르인 부소니 콩쿠르에서 우승을 비롯해 ‘5관왕’을 차지한 그는 오는 19일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리는 ‘2021 경기피아노페스티벌’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이준헌 기자


박재홍은 무대 위에서 무서운 몰입감을 보여주는 연주자다. 평소 음악 외에도 문학, 미술 등에서 영감을 얻으려 하지만, 막상 무대에 올랐을 때는 “모든 것을 비우고, (음악에) 몸을 맡겨야 하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무대에서 작곡가들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영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걸 위해선 물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연습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곡과 작곡가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새 곡을 접할 때도 먼저 악보를 사기보다는 논문을 여럿 찾아보며 공부를 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는 “그게 곡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히 전달하려는 연주자가 있고, 본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연주자가 있죠. 뭐가 맞다 틀리다 할 수 없는데, 저는 전자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아요. 그럼 연주자의 개성, 저만의 언어는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까요?”

“위대한 작곡가의 곡을 접하고 연주할 때 언제나 벅차고 설렌다”고 말할 땐 톤이 높아졌다. “쇼팽이 죽어갈 때쯤 쓴 자필 원고를 보면, 글씨가 정말 다 날아다녀요. 폐병으로 온몸이 떨려 제대로 쓸 수 없었다고 하는데, 그때 쓴 악보를 보면 정말 프린터로 찍어놓은 듯, 어긋나는 음표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에게 음악은 탈출구였고 호흡기였겠죠. 그런 걸 볼 때 정말 벅차오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위안 같은 게 있어요. 낮은 자세로, 그런 위대한 작곡가들의 메시지를 전하는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박재홍은 인터뷰 내내 무대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이야기했다. “그런 순간이 있어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나와 피아노밖에 없는 느낌.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피아노와 내가 대화하는 느낌이죠. 그런 순간이 많지는 않은데, 연주에 깊이 빠져들어 그런 순간을 맞으면 정말 행복합니다.” 자신의 연주의 강점을 묻는 질문엔 잠시 머뭇거리다 멋쩍게 “음악을 너무 사랑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무언가를 아무런 이유 없이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 아닐까요?”

박재홍은 콩쿠르 참가는 당분간 하지 않고 연주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미 내년까지 국내외 연주 일정이 빼곡하다. “어린 나이부터 콩쿠르에 나가다 보니, 저도 모르게 독소처럼 압박감이 몸에 배어 있더라고요. 감사하게도 큰 상을 타서 좋은 무대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었고, 이제 스스로를 좀 돌보며 제 목소리에 좀 집중해보려고요. 저만의 음악, 저만의 언어를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서보려 합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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