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우위 미 대법원, '텍사스 임신중단 금지법'에 제동 걸까?

김윤나영 기자 2021. 11. 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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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임신중단권리 지지자와 반대자가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건물 주변에서 시위하고 있다. 워싱턴|EPA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 6주 내 중절을 원천 금지한 ‘텍사스 법’에 대한 회의론을 표명했다. 보수 우위의 미 대법원이 원고인 의료기관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텍사스 법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대법원은 1일(현지시간) 텍사스 임신중단 금지법에 대한 구두 변론을 청취하고 원고인 의료기관이 대법원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할 뜻을 내비쳤다. 대법관 9명 중 진보 성향 대법관 3명 전원과 보수 성향 대법관 2명이 의료기관 측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의 핵심 쟁점은 텍사스 법의 위헌 여부가 아니었다. 임신중절 수술을 한 의료기관과 미 법무부가 이 법에 대한 위헌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있는가였다. 원고 측 엘리자베스 프렐로거 미 법무차관은 “(텍사스 법이 허용되면) 헌법상의 권리가 안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피고 측 주드 스톤 텍사스주 법무장관은 “연방 정부와 임신중단 제공자(의료기관)가 연방 법원에서 주 정부를 고소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맞섰다.

미 대법원은 1973년 임신 24개월까지 모든 임신 중단을 허용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텍사스 법은 임신 6주 이내의 모든 임신중단을 원천 금지하면서 일반 시민이 임신중절에 조력한 산부인과 의사나 우버 기사 등을 고소하면 최소 1만달러(1175만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 위헌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임신중단 금지 문제를 개인 간의 ‘현상금 분쟁’으로 만들어 주 정부의 책임을 교묘히 피해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관들은 임신 중절 단속의 주체를 불특정 다수에게 전가한 텍사스 법의 형식이 다른 법에도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수 성향의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텍사스 법이 미국의 법률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했다”면서 대법원이 그 허점을 닫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테면 민주당이 장악한 주에서 총기 판매를 주법으로 불법화하고 총기판매상에게 100만달러의 현상금을 걸 수 있지 않냐고 따져 물었다. 진보 성향의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도 “다른 주에서 비슷한 법 집행을 통해 주민들의 헌법적 권리를 거부할 선례를 만들 수 있다”면서 “총기 소유, 동성 결혼, 종교적 권리 등 모든 것이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대법원이 임신중절을 제공한 의료기관의 이의제기권을 허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대법관들이 미 법무부에도 이의제기 자격을 부여할지는 다소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고 인터넷매체 악시오스가 전했다.

대법원이 절차적 이유로 텍사스 법을 무효로 만들어도 임신중단 자체에 대한 법리 다툼의 여지는 여전히 남는다. 오는 12월1일 임신 15주 이후의 임신중단을 금지한 미시시피주 법 심리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 법은 임신중단 금지 집행의 주체를 주 정부로 규정해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정면으로 거슬렀다.

심리가 진행되는 3시간 동안 임신중단 권리에 찬성하는 여성단체와 반대하는 종교단체가 연방대법원 건물 밖에서 동시에 집회를 열었다. 임신중단권 찬성론자들은 여성을 출산 도구로 착취한다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디스토피아 소설 <시녀 이야기>에 나오는 붉은 옷을 입고 대법원 건물 주변을 행진했다고 텍사스트리뷴이 전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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