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는 어쩌다 '노잼' 시나리오의 집결지로 변했나

박생강 칼럼니스트 2021. 11. 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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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 10년 '밀회'·'유나의 거리' 같은 명작 사라진 JTBC 드라마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10년 전 종편 개국 후 JTBC는 의욕적으로 드라마를 통해 채널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물론 지상파 위주의 방송시장에서 그 전략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경우가 많았다. 누구도 종편의 드라마를 보려고 하지 않았던 때였다.

그 시절에 JTBC는 지상파에서 보기 힘든 신선한 드라마들을 제법 선보였다. 노희경 작가가 판타지적 요소를 이야기에 섞는 실험을 한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부터가 그랬다. 하지만 JTBC 드라마가 특유의 색깔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은 <청담동 살아요>와 <아내의 자격>을 통해서였다.

시트콤과 통속극의 전형을 띄고 있지만 두 작품 모두 한국의 계급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있었다. 두 작품의 성공으로 JTBC는 지상파와는 다른 메시지와 재미가 녹아들어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뚝심 있는 작가들의 면면도 돋보였다. <청담동 살아요>는 tvN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의 박해영 작가가 유명세를 타기 전에 쓴 작품이었다. <아내의 자격>은 이미 <아줌마>로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 냉소적인 메스를 들이댄 안판석 감독과 정성주 작가 콤비의 웰메이드 드라마였다.

이후 JTBC는 2014년 <밀회>와 <유나의 거리>를 통해 드라마적 드라마의 재미와 예술적 가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안판석·정성주 콤비의 <밀회>는 배우 김희애, 유아인과 함께하면서 클래식 시장을 배경으로 우아하면서 천박한 한국 사회 하이클래스를 비판한다. <유나의 거리>는 반대로 김운경 작가가 오랜만에 보여준 휴머니즘과 씁쓸한 코미디가 넘치는 서민들의 이야기였다. JTBC는 2014년 두 개의 드라마를 통해 남다른 감각으로 각기 다른 한국 사회의 현실을 드라마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반면 개국 10년을 맞은 2021년 JTBC 드라마는 힘이 떨어진 지 오래다. 아마 2020년 <부부의 세계>의 대히트 이후 <우아한 친구들>, <경우의 수>, <사생활> 같은 얄팍하고 황당한 작품으로 그런 조짐이 보였다. 그 대안으로 2020년 후반 <허쉬>를 시작으로 황정민을 포함 조승우, 전도연, 김명민 등의 쟁쟁한 스타들의 주연급 드라마를 선보였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냉소에서 시작해 외면으로 끝났다. 신하균, 여진구 주연의 <괴물> 정도만이 대중적으로 평타를 쳤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JTBC 드라마는 여전히 <인간실격>이나 <허쉬> 등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보여주려 노력한다. 또한 <사생활>이나 <경우의 수> 등을 통해 MZ세대에게 어필할 콘텐츠를 만들어내려 애쓴다. <시지프스> 같은 대작으로 SF에도 발을 디뎠다.

다만 JTBC 드라마의 다양한 노력은 '재미없음'이라는 의미 없는 초점으로 수렴한다. 일단 2021년 JTBC 드라마는 너무 예쁘게 포장하려 노력하거나, 너무 메시지를 보여주려 극단적으로 가거나, 너무 예술적인 가치에 몰입한다. 그러다보니 정작 드라마의 기본, 쭉쭉 흘러가는 이야기의 재미는 놓친다. 물론 재미는 놓쳐도 그 와중에 절대 PPL만은 포기할 수 없었고.

사실 드라마는 엔터의 영역이지, 아트나 CF, 계몽서적이 아니다. 엔터 안에 이런 다른 요소들이 토핑으로 올라가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엔터를 내던지고 다른 요소가 주가 되면 그 드라마는 들인 제작비에 비해 흥행몰이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런 영상은 작은 개봉관에서 예술영화로 소수의 마니아들의 박수를 받거나, 영상미 가득한 CF로 쓰는 게 낫다. 물론 <허쉬> 같은 경우는 대학에서 취업 관련 특강 자료로 쓸 수 있겠다. 나중에 이렇게 자기연민에 빠져 술만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직장상사는 절대 피하세요, 에 적합한. 그리고 안타깝게도 JTBC 드라마의 많은 인물들이 자기연민이 많다. 결코 2021년의 흥행 감각은 아니다.

아마 <괴물>만이 2021년 JTBC 드라마 중 엔터의 재미와 다른 영상미적 요소가 적절하게 섞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괴물>의 경우는 예상대로 시청률에서 나름 선방했고, 마니아층이 형성되기도 했다. 또 <로스쿨>은 2021년 JTBC 드라마 중 가장 JTBC 드라마 특유의 감성이 없었다. 그런데 그저 이야기와 반전에 충실했던 <로스쿨>이 올해 JTBC 드라마 중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것이다.

아쉽게도 JTBC 드라마는 여러 면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영화로 제작될 법한 2시간짜리 시나리오 아이디어가 <스카이 캐슬>의 성공 이후 JTBC로 다량 흘러들어오면서 16부작 혹은 그 미만의 지루한 시리즈로 제작된 건 아닐까 의심스럽다. 아니라면 이렇게 엿가락처럼 기괴하게 늘어나는 12부작 내지 16부작 드라마들이 탄생하기 어렵지 않을까?

더구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의 성공으로 JTBC 드라마는 어느새 신선하고 현실적은 드라마가 아닌 낡은 감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20년 드라마 맛집이란 슬로건을 내세웠던 JTBC. 골목식당을 살릴 백종원은 있다. 하지만 2021년 현재 초라해진 드라마 맛집을 살릴 방법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시청자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이야기나 골방에 앉아 웅얼대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청자와 마주볼 수 있는 드라마가 필요할 것 같긴 하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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