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찍을 맛 안 나는' 선거,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이종태 편집국장 2021. 11. 2.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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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 출간된 〈회색인〉(작가 최인훈)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관련 동영상(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청년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한국어로 흘러나오는 가운데 같은 이름의 게임에 열중하는 내용)을 보다가 이 소설을 떠올렸습니다.

최인훈 선생이 무려 60여 년 뒤를 내다본 것일까요? 그러나 이 '소설 내 수필'의 핵심은 '그런 바람직한 일이 일어날 것'이란 기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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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작가(사진)의 <회색인>은 ‘한국이 식민지를 가진 부국이라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을 익살스럽게 그려냈다.​​​​​​​ⓒ연합뉴스

1960년대 초 출간된 〈회색인〉(작가 최인훈)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4·19 혁명 직전을 무대로 한 이른바 ‘지식인 소설’이죠.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관련 동영상(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청년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한국어로 흘러나오는 가운데 같은 이름의 게임에 열중하는 내용)을 보다가 이 소설을 떠올렸습니다.

〈회색인〉은 주인공인 대학생이 학술 동인지에 기고한 ‘소설 내 수필’로 시작됩니다. ‘한국이 식민지를 가진 부국이라면 어떻게 될까’를 익살스럽게 그렸습니다. “허균은 조나단 스위프트의 큰 선배며 토머스 모어의 선생이라고 밝혀질 것이며” “우리들의 식민지를 가령 나빠유(NAPAJ:일본의 영단어를 거꾸로 쓴 것)라고 부른다면 ‘정송강(정철)과 나빠유를 바꾸지 않겠노라’ 이런 소리를 탕탕 할 것”이라고 합니다. 다음 문장들은 어떻습니까? “음악의 발달은 아유 기막혀서 비엔나를 가리켜 ‘오스트리아의 서울’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심지어 국악 붐이 일면서 “넋의 어깨춤이 절로 나는 백천 번 멋들어진 가락이 전 세계의 음악 팬을 환장하게 만들 것이다.”

최인훈 선생이 무려 60여 년 뒤를 내다본 것일까요? 그러나 이 ‘소설 내 수필’의 핵심은 ‘그런 바람직한 일이 일어날 것’이란 기대가 아닙니다. 오히려 ‘절대 없을 상황’을 통해 당시 선진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풍자하고 한국의 초라함을 자학합니다. 최인훈 선생은 1930년대 초반 일본의 식민지(조선)에서 태어나 세계 최빈국에서 청년 시절을 보낸 분입니다.

한국인들이 미국은 물론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 서방 선진국들(심지어 옛 소련 같은 ‘기존 사회주의국가’)을 동경하고 따라 배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한국은 글로벌 차원의 흐름을 주도하거나 혹은 이에 따른 변화(그것이 좋든 나쁘든)를 가장 먼저 체험하는 국가 중 하나로 성장해버렸습니다.

차기 대선의 경쟁 구도가 어느 정도 전망되면서 어떤 분들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탓하곤 합니다. 찍고 싶은 후보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선진국들의 정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선 극우 포퓰리즘이 머리를 쳐들고 있습니다. 일본은 자민당 장기 집권의 폐해가 뚜렷한데도 이를 돌파할 힘이 보이지 않습니다. 글로벌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나치게 동정하지 않는 것이 유권자로서 혼란스러운 대통령 선거에 ‘맞서는’ 합리적 태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종태 편집국장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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