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백의자유롭게세상보기] 어른을 찾기 힘든 사회
옛 시대적 가치관 일방강요
청년들에게 존경 기대 못 해
변화 이해하고 상호 소통을
국어사전에 의하면 어른은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나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을 칭하기도 하지만, 나이를 넘어 자기 일에 책임을 지며 집단에서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을 어른이라 정의한다. 나이 많은 어른이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존경할 만한 어른을 찾기는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사회가 빠르게 변하며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꼰대, 라떼 등 어른답지 않은 어른을 풍자하는 단어가 최근 회자하는 현상은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어른을 찾기 힘든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인을 넘어 역사와 구조의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성숙과 퇴화를 동시에 경험한다. 생애과정을 통해 다양한 경험과 새로운 관계를 통해 문화와 지식을 습득하며 생각과 행동을 발전시킨다. 하지만 경험과 신체의 한계로 세상의 변화를 모두 인식하고 수용할 수는 없기에 불가피하게 현재의 가치와 문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퇴화를 겪게 된다. 인간은 타고난 심성과 특성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통해 성장하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지난 시간과 경험의 산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상황은 조금 독특하다. 대한민국은 100년이 되지 않는 짧은 시기에 조선이라는 봉건왕조 국가에서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사독재를 거치며 지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일원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배출하는 세계적 수준의 나라가 되었다. 많은 고초도 있었지만 경제와 문화로 대변되는 외형적 측면에서만은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 발전을 이룩했다.
이렇게 빠르게 진행된 물질적 번영이 반드시 정신문화의 발전을 뜻하지는 않는다. 전근대적 사고가 근대적 사고로 넘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국민소득이 10배 증가하는 데 걸리는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청장년기에 정립한 가치관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데 세대의 전환보다 사회의 변화가 훨씬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는 이유는 자녀를 출산하는 나이가 보통 30대라는 점도 있지만, 적어도 30년은 살아야 한 사람의 사고와 가치 체계가 어느 정도 정립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고작 3세대 만에 왕정국가에서 자유민주국가로 변모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 과정에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지체가 일어나며 세대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물론 세대갈등은 우리 역사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은 아니다. 기원전 1700년 수메르 점토판에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적혀 있을 정도로 오래된 사회현상이다. 어찌 보면 인간이 정체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며 발전되고 있기에 세대갈등은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과거의 가치관 가운데 우리가 계승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다. 민주주의 초기에는 인간을 존중하는 습속이 우리 가치관에 깊게 자리 잡지 않았다. 하지만 역사는 끊임없이 인간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며 현대사회에서는 과거에 억압받았던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사회적 약자, 하위 계층 등도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는 시대정신이 근본가치로 자리 잡았다. 위계, 지위, 성별, 관습을 통해 개성과 자유를 억압했던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어른을 찾기 힘든 이유는 개성보다는 집단, 합리보다는 권위, 여성보다는 남성, 역량보다는 지위와 나이가 판단의 기준이 됐던 청장년 시절의 시대적 가치관을 고수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며 세상의 변화에 동참하지 못하는 어른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수용할 수 있는 가치관일지 몰라도 이제는 달라진 세상에서 과거의 가치관을 청년세대에게 강요하면 어른으로 존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현대의 가치가 모두 옳은 것도 아니며 과거의 가치 역시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사회변동의 큰 틀 안에서 서로 소통하며 연대와 협력의 의미를 찾도록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대갈등을 넘어 존경받는 어른이 많아져야 사회의 연속성이 유지되며 예전부터 축적된 인간의 지혜가 후대로 이어져 사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며 청년이 다가오게 만드는 어른이 더욱 그리워진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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