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접근동기를 가지게 될까
[강원국의 ‘공부하면 뭐 하니’]
연재ㅣ강원국의 ‘공부하면 뭐 하니’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했습니다. 내가 살던 도시에선 모름지기 그 학교를 나와야 행세할 수 있는 때였습니다. 아버지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낙방한 것을 알게 된 날,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가 내게 얘기했습니다. “처칠도 육군사관학교를 세번 떨어졌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때 티브이에서는 최백호씨가 부르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죠.
고등학교에 가서도 철이 들지 않았습니다. 후기 고등학교를 다닌다는 자격지심도 컸습니다. 매일 내가 떨어진 학교 앞을 지나 멀리 있는 학교에 등교했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여학생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엇나가기 시작했죠. 아버지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속셈으로 독서실에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신이 나셨습니다. 시장에 가서 침낭도 사주시고, 옷도 사주시고, 독서실에서 아프면 먹으라고 소화제와 두통약도 챙겨주셨습니다. 나는 사주신 물건을 들고 독서실이 아닌 친구 집에 갔지요. 담배 피우고 술도 마셨습니다. 아버님 속을 무던히도 썩였습니다. 급기야 고등학교 3학년을 한번 더 다녀야 했습니다.
고교 시절이 다 끝나갈 무렵, 아버지가 울먹이며 말씀하셨습니다. “엄마의 마지막 말이 뭔지 아니? 초등학생인 너를 두고 가면서 내게 신신당부했어. ‘아이들 공부 끝까지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럴 테니 걱정 말고 편히 가라고 했지. 그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문득 아버지에게 미안했습니다. 말썽 피우는 내게 화도 날 법한데 참고 기다려주는 아버지가 고마웠습니다.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건 동기 부여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쉰살 되기 전까진 세상에 삿대질하며 세상과 불화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이 폼 나고 멋있는 삶이라 생각했습니다. 꼭 10년 전 암 선고를 받은 뒤 비로소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내가 남에게 준 것보다 받은 게 훨씬 많다는 것, 손해 본 것보다는 이익 본 게 월등히 많고, 수지맞는 장사 하며 살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니 모든 건 덤이고 하루하루가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았지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그 아들을 두고 아내와 늘 얘기합니다. 나는 햇볕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합니다. 참고 기다리면서 아들에 대한 기대를 놓지 말아야 한다고 말이죠. 그러면 언젠가는 부모 진심을 알아차릴 것이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그러나 아내는 생각이 다릅니다. 결핍이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이 그랬다고요. 그 옛날 떠먹는 요구르트가 처음 나왔을 때, 그게 그렇게 먹고 싶었답니다. 하지만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형편이 안 됐던 거죠. 그래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러기 위해 공부했다고 하네요.
나와 아내의 생각은 아들에게 안정감을 줄 것인가, 불안감을 안겨줄 것인가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나는 아들에게 “부모는 항상 너를 믿고 기대하며 지원해줄 것이다. 너의 버팀목이 되어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런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감 속에서 창의적인 노력을 펼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러면 아들이 분투하지 않는다, 그래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그럴 필요도 없게 된다고 강변합니다. 한마디로 분투해야 하는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죠.
접근동기와 회피동기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는 인간의 동기를 ‘접근’과 ‘회피’ 두가지로 구분합니다. 쉽게 얘기해서 접근동기는 칭찬받기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이고, 회피동기는 혼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접근동기로 성공했을 때는 기쁨이란 감정을 느끼는 반면, 회피동기로 성공했을 때는 안도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반대로 실패했을 때는 어떤 감정을 느낄까. 접근동기는 슬픔을, 회피동기는 불안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회피동기, 즉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잘해야 안도감이고, 대부분은 불안감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접근동기로 살아가게 만들까요. 기대를 놓지 않는 것입니다. 기대를 해도 될까 말까인데, 기대조차 하지 않으면 잘될 확률은 제로에 가까울 수밖에 없겠지요. 기대하지 않는 대상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이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무작위로 뽑아 그 명단을 교사에게 주면서 지능지수가 높은 아이들이라고 말한 뒤, 8개월 지나 보니 명단에 오른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평균 점수가 높았다고 합니다. 교사가 기대나 관심을 가질 때 학생의 학업 성취도가 높아진다는 ‘로젠탈 효과’입니다.
나는 여전히 햇볕정책을 믿습니다. 적어도 내게 그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었으니까요. 나를 닮았다면 아들도 언젠가는 스스로 알아서 부모에게 부응하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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