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책임진다는 치매, 전문병동 28%는 전문의 0명

김태주 기자 2021. 11.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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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공립요양병원 치매 병동, 전문인력 태부족

지난 2019년 치매 전문 병동을 설치해 운영 중인 호남의 한 요양병원. 치매 환자 100여 명을 치료하고 있다. 그런데 ‘치매 전문 병원’을 운영한다는 이 병원엔 정작 치매 치료에 필요한 신경과·신경외과·정신건강의학과 등 치매 관련 전문의는 1명도 없다. 대신 치매 관련 교육을 수료한 타(他) 전공 전문의 3명과 간호사·간호조무사 20명이 치매 환자를 돌본다. 이 요양병원 관계자는 “3년째 분기마다 의사·간호사 등 채용 공고를 내지만, 시골 요양병원에서 ‘치매 전문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며 “지난 달에도 전문의 한 명, 간호사 한 명이 그만 둬 있는 인력 유지하기도 버거운 상황”이라고 했다.

2024년쯤 ‘치매 환자 100만명 시대’가 예고됐지만, 치매 환자를 돌볼 의료진은 태부족이라 치매 환자와 가족들의 걱정과 부담이 여전히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치매 병동 5중 1곳만 전문 인력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7년 9월 18일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치매국가책임제’를 내놨다. 당시 문 대통령은 “그동안 치매 때문에 많은 가정이 무너졌다”면서 “치매 극복, 이제는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전국 256곳 보건소 등에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해 치매 상담·검진 서비스를 해주고, 치매 환자들의 병·의원 진료비 부담도 줄여주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치매국가책임제의 또 한 축이던 국공립병원의 치매 전문 병동이나 치매 안심 병원 확대는 전문 의료진 확보가 어려워 애를 먹는 상태다. 환각·폭력 증상까지 나타나는 중증 환자들은 전문적으로 치료받을 시설이 필수적인데, 치매 돌봄의 한 축이 여전히 위태롭다는 뜻이다.

본지 의뢰로 국회 보건복지위 이종성(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전국공립요양병원에 설치된 치매 전문 병동 50곳 가운데 치매 관련 신경과·신경외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나 치매 환자 전담 간호 인력, 임상심리사 등까지 모두 갖춘 곳은 11곳(22%)뿐인 것으로 집계됐다. 치매 관련 전문의·간호 인력 등의 요건은 치매 관리법에 명시돼 있고, 치매 전문 병동 운영 권고 기준으로 삼는데 이를 충족하는 곳이 드물다는 뜻이다.

심지어 치매 전문 병동 14곳(28%)엔 치매 관련 전문의가 단 한 명도 없는 상태다. 치매 전문 병동을 운영하는 지방 요양병원들은 “일반 환자 돌보는 의료진 구하기도 어려운 판에, 자해 행위까지 하는 까다로운 치매 환자를 돌볼 인력은 구하기 더 힘들다”는 목소리다.

치매 안심 병원이 현재 전국에 5곳밖에 없는 것도 인력 부족 문제와 직결된다. 치매 전문 병동이 설치된 공립 요양병원이 치매 전문 인력과 시설 기준을 모두 갖춰야만 ‘치매 안심 병원’으로 지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 “인력 확충 위한 지원해야”

의료 현장에선 인력 확충을 위한 추가적인 정부 지원이 시급하단 지적이다. 충남의 한 요양병원 행정원장은 “정부의 지원은 병동 설치와 의료 장비 구입 등 초기 인프라 구축에만 한정돼 있는데, 치매 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력 확충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면서 “치매 전문 의료진이 없다면 양질의 치매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남의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의사들은 교통 좋은 수도권 대학 병원을 가려고 하고, 굳이 시골 요양병원까지 와서 치매 환자를 돌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의료진 인건비나 운영비 관련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치매 관리에 앞선 일본처럼 우리도 더 정교한 인력 운영 방안과 기준을 빨리 마련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본의 경우, 치매 환자 100명당 의사 3명을 배치하고, 3명 중 한 명은 반드시 정신과 전문의를 포함해야 한다는 구체적 기준을 포함해 전문 병동을 운영 중이다. 복지부 치매 정책과 담당자는 “현재 치매 환자를 집중 치료해 90일 이내에 퇴원시키는 치매 안심 병원에 인센티브가 나가고 있지만, 기준이 까다롭고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개선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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