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미·중관계사] 우드로 윌슨과 미·중관계 전환 역부족

- 2021. 10. 3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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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회담은 없었다.

당분간 미·중 정상회담의 개최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기 때문에 미·중관계의 전환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미·중관계의 전환을 추동할 수 있는 중국 국내 정치상황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1913년 민주당 출신의 우드로 윌슨은 대통령에 취임하며 미·중관계의 전환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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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회담은 없었다. 시진핑 주석이 화상으로 대신 참석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분간 미·중 정상회담의 개최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기 때문에 미·중관계의 전환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연말에 회담이 없는 관례와 내년 초 동계올림픽과 ‘양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연이어 개최되기 때문이다. 미·중관계의 전환을 추동할 수 있는 중국 국내 정치상황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아편전쟁 이후 미·중관계는 20세기 초에 처음으로 고비를 맞았다. 공화당 대통령(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윌리엄 태프트)이 연이어 선출되면서 중국정책이 변했다. 강경책은 아니었지만 우호적이지 않았다. 중국인의 이민 금지법 제정이 상징적이었다. 미국의 관심도 일본으로 전환했다. 1913년 민주당 출신의 우드로 윌슨은 대통령에 취임하며 미·중관계의 전환을 꾀했다.
옌칭대학 존 레이튼 스튜어트 총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현판. 출처:예일대학교
윌슨의 중국 선교사 사촌과 그의 친구이자 옌칭대학 총장 존 레이튼 스튜어트 등이 배후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와 같은 신념을 공유한 위스콘신대학 교수인 폴 라인시를 중국 공사로 임명했다. 이들과 위안스카이 총통은 중국 근대화와 민주화에 미국의 투자가 관건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다. 가령 윌슨은 근대화에 필요한 자금을 중국이 자급하길 희망하면서 윌슨은 국제금융컨소시엄에서 미국의 탈퇴를 결정했다. 중국의 민주화와 기독교화 정책에도 박차를 가했다.

라인시는 1913년 11월에 부임하자마자 위안스카이와 각료들과 연속 회담을 가졌다. 정책은 변했으나 중국의 정치상황이 변하지 않으면서 미국 투자가를 설득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일본의 훼방, 중국 보수파의 반대, 미국 투자가의 무관심 등이 장애로 작용했다. 우호적인 외교관과 정책만으로는 역부족함이 드러났다. 결국 중국 국내 정치 상황이 관건이었다. 미·중 정상이 G20에서 기후변화와 같은 국제적인 문제의 해결에 합의할 수 있으나 중국의 국내 상황이 이를 실천할 조건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 국제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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