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완벽.. 변치않는 명작의 품위
날 선 칼처럼 일사불란한 '칼군무'에 감탄의 연속
'15년 호흡' 홍향기·이동탁, 빈틈 찾기 어려운 무대 선사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이번 공연 주역 ‘지젤’로는 발레단이 자랑하는 간판스타 홍향기, 손유희, 한상이가 무대에 올랐다. 그중 춤의 기교와 힘에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홍향기가 보여준 이번 ‘지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역시 1막 마지막 광란의 춤이었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알브레히트가 약혼녀를 둔 귀족이었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순진무구한 시골 소녀 지젤은 믿었던 사랑의 배신에 미쳐버린다. 이전까지 활달했던 소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연인의 거짓을 알게 된 내면의 충격이 고스란히 표출된다. 머리를 풀어헤친 지젤의 시선은 허공을 떠다니고 파멸로 치닫는 춤에선 다른 발레에선 보기 힘든 광기가 번득인다. 사전 인터뷰에서 “30대가 되니 연륜이 쌓여 굳이 기술적인 시도를 하지 않아도 흘러가는 대로 동작이 만들어진다. 연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정말 세세한 것까지 신경 쓰고 있다”던 홍향기. 벅찬 사랑의 기쁨에서 풀려나서 갑작스레 현실에 맞닥트려 자아가 부서지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실감 나게 보여주면서 무용극으로서 발레가 가진 힘을 실감하게 했다.
지젤의 죽음 이후 시작된 2막 밤의 세계에서 역시 탄성을 내지 않을 수 없는 명장면은 ‘윌리’의 춤. ‘백조의 호수’ 호숫가 장면이나 ‘라 바야데르’의 망령의 왕국 쉐이드 군무와 함께 3대 군무로 손꼽히는데 이날 공연은 그 이유를 실력으로 설명했다. 푸른 달빛 서린 숲 속에서 순백의 로맨틱 튜튜를 입은 윌리들이 안갯속을 떠다니듯 춤추는 모습은 이 세상 것이 아닌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다 무대 양편으로 나뉘어 그냥 서있기도 힘든 아라베스크를 유지하며 교차하는 장면은 근래 관람한 다른 두 군무를 볼 때보다 더 큰 감동을 줬다.
지난 15년 동안 유니버설발레단에서 함께 활동한 홍향기·이동탁 콤비의 완벽한 조화는 2막 피날레에서 더욱 돋보였다. 죽음이 다가오는 춤으로 지젤과 함께 춤추다 지친 알브레히트는 쓰러지고 지젤은 새벽이 올 때까지 홀로 춤추며 사랑을 지킨다. 새벽 종소리와 함께 망령들은 사라지고 지젤 역시 사랑을 두고 자신의 무덤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2인무에서 1인무로 이어지는 이 피날레에서 홍향기의 완성된 기량이 빛났고 둘의 호흡은 틈을 찾기 어려웠다. 홍향기의 애절한 퇴장과 이동탁의 뒤늦은 후회와 오열은 ‘지젤’의 진짜 주제인 ‘용서’와 ‘사과’가 얼마나 어렵고, 그만큼 값진 것인지 춤으로 보여줬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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