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이재명 프레임에 갇힌 국힘 경선
내년 3월의 대통령 선거는 한마디로 '이재명 후보냐, 아니냐'로 요약된다. 이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이재명 전 경기지사를 대통령 후보로 확정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왜 윤석열 후보가, 왜 홍준표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지 "이재명 후보는 안 된다"라는 네거티브 외에는 전략이 없다.
사람들은 "이재명 후보가 딱히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국민의힘 후보들에게 특별히 믿음이 더 가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20대 대통령 선거는 어쩌면 이재명 후보에 대한 찬반 인기투표로 끝날 지도 모른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이재명 후보는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의혹에 시달려왔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대장동 개발이익을 특정업체에 몰아주는 과정에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얼마나 관여했는지가 쟁점이다. 야당은 여러 가지 정황증거로 이재명 후보를 몰아붙였으나 이 후보는 관련성을 단호하게 부인해왔다. 이 과정에서 이 후보는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그 뿐이다.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이 후보는 2~3일에 하나씩 자신만의 어젠다를 던지고 있다. 소상공인 허가제, 주4일근무제, 전국민재난지원금 100만원지급 등의 굵직한 공약을 쏟아냈다. 이 후보의 발언이 언론에 소개되면 국민의힘에서는 이를 비난하고, 해당 발언은 다시 언론에 보도된다. 그 과정을 통해 이재명 후보는 해당 이슈를 하나씩 선점해가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렇다 할 공약을 아직 내걸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0년 9월 당을 정비하면서 "공정한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여 경제민주화를 구현하고, 사회적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며, 편법과 부정부패에 단호히 대처하여 공동체 신뢰를 복원한다"고 정강을 내세웠다. 대통령 경선 후보들은 당의 정강을 어떻게 실천할 지에 대해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하지만 경선에 나선 후보들은 자신을 알리는 공약 대신 이재명 후보의 공격에만 몰두해왔다. 너나 할 것 없이 "대통령이 되면 이재명 후보를 구속시키겠다"고 말할 뿐이다. 지난달 27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에서는 자신들의 정책이 아닌 이재명 후보의 탄소세 정책을 놓고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의 코미디다.
압권은 본경선 여론조사 문항이다. 당의 정강을 누가 잘 실현할 것인지 물을 것이라고는 애초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것 같으냐' '대통령 후보로 누가 적합한가' 조차 묻지 않는다. 대신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양자 대결을 한다면 국민의힘 후보인 원희룡, 유승민, 윤석열, 홍준표 후보 중 누가 가장 경쟁력이 있는 후보라고 생각하십니까'를 묻는다.
본선 경쟁력을 명분삼아 이재명 후보와의 가상대결 결과로 후보를 결정짓겠다고 한다. 만약 이재명 후보가 대장동 개발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로 후보직을 사퇴한다면, 국민의힘에선 대통령 후보를 다시 뽑아야 한다. 이 후보의 대항마로서 후보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영악하다. 부동산 정책 실패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이 크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오가는 상황임에도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이재명 후보의 당선은 정권교체"라는 말까지 한다. 이 후보가 그동안 중앙 정치와 떨어져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문재인 정부와 거리감을 두면서 정부에 실망한 중도층의 표를 모으겠다는 계산이다. 어짜피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국민의힘 후보를 뽑지 않을테니 말이다. 여기에다 서민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정책공약을 제시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언어학자 레이코프(Lakoff)는 저서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Don't think of an elephant)에서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만 떠올리기 마련이라고 지적한다. 공화당의 정책을 욕하면서도 결국 공화당의 논리에만 익숙해지는 것이다. 바로 공화당의 프레임(Frame)에 빠지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의힘은 이재명 후보를 비난하고 반박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신들의 정책 어젠다도, 프레임도 내세우지 못한 채 이재명 후보의 프레임 속에 갇혀 있다. 그럴수록 국민들은 이재명 후보의 정책만이 기억에 남게 된다. 오는 5일 확정되는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이재명 후보에 대한 비난보다 자신의 어젠다로 정책 경쟁에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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