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호 칼럼] 개에게 감을 주련다.. 정말 '개유감'이다
나라를 이끌 대통령을 뽑는 대선의 계절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일이 어떤 경우 중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만은, 이번 대선만은 좀 더 다르다고 주장하고 싶다.
고래로 동양에는 500년 역사관이라는 게 있다. '성현은 500년에 한 번 난다'는 공자 말씀에 기인한 관점이다. 중국의 역사를 살핀 많은 학자들이 이 말에 적지 않은 공감을 한다. 성현이 나온다는 데 공감하는 게 아니라 중국의 역사를 보면 대략 500년에 한 번씩 사회적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데 공감을 한다.
여기서 사회적 패러다임은 조용조(租庸調) 과세체제를 기본으로 한 정부의 집권 시스템 전체를 의미한다. 학계에 따르면 중국에서 대략 한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 대략 80~100년가량 대대적 사회적 발전을 이루고 그후 쭉 이어진다. 이런 관점에서 공자 말씀을 되새기면 '성현이 나와 사회 기틀을 새롭게 하면 대략 100년간 사회적 발전을 이루고 그 뒤 400년을 이어간다'는 뜻이 된다.
이런 관점을 한자에 빗대 설명하는 게 '설 입(立)자 역사관'이다. 다섯 획의 한자 '설 입'으로 500년 패러다임 변화를 풀이하는 것이다. 초기 80~100년의 발전으로 사회 성숙도가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활강 하락을 한다. 그러다 누적된 부조리를 견디지 못하고 사회적 변혁기를 맞는다. 사회 지도부, 즉 새로운 왕조가 등장해 다시 시스템을 정비하면서 발전을 이루지만 결국 다시 부조리가 쌓이고 패러다임 자체가 완전히 붕괴되는 순간을 맞는다는 풀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당송 시대, 명청 시대 등이 있다.
한반도 역사도 이 '설 입자 역사관'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대략 500년 왕조가 한 사회 시스템을 이어 갔다. 중국과 다른 게 있다면 중국이 성씨를 바꾸는 왕조변화가 있었던 반면, 한반도 정권의 경우 성씨는 바꾸지 못하고 정치적 변혁만 추구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점이다.
조선 영·정조의 르네상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임진왜란으로 망해야 했을 이씨 왕조를 이어갈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은 탓에 나타난 현상이다. 정통 적자 승계가 아닌 방계인 영조가 왕실을 이어받으면서 개혁을 일궈냈지만 이씨 왕가라는 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친자식을 굶겨 죽이는 불행을 자초한다. 아무리 미운 자식도 먼저 병사라도 하면 가슴 아픈 게 천륜인데 스스로 굶겨 죽였으니 그 아픔과 고통은 '죽음에 이르는 배고픔'보다 적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사실 불행했던 것은 영조와 사도세자 그들뿐이 아니다. 미흡한 개혁조치로 이후 200년 이상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가난과 궁핍의 나라 조선에 살았던 백성들이다. 이 '설 입자 역사관'에 따르면 한 사회 시스템이 발전하는 80~100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미사일로 치면 어느 고도의 활강궤도에 오르느냐를 결정하는 시기다.
바로 이번 대선이 중요한 이유다. 건국절, 광복절 논란이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한 이래 현 사회 시스템은 80년에서 100년 사이, 400년 국운의 고도를 결정하는 시기에 와 있다. 이 땅에 다시 조선 말기와 같은 가난과 궁핍의 나라가 재래할 것인가,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번영의 나라가 있을 것인가. 내년 대선으로 뽑힌 대통령이 그 열쇠를 쥔 것이다.
이를 되새기며 대선 후보들을 보면 저절로 혀끝이 차지는 걸 막을 수 없다. 무엇보다 아쉬운 게 이 같은 역사의식과 그 자리의 엄중함에 대한 인식의 결핍이다. 여야 유력 후보들 모두가 가볍기만 하다. 어떤 이는 논란 많은 이슈를 깊은 고민 없이 툭툭 내던지고만 있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의 발언에 대한 사과 요구를 받자, 개에게 사과를 주는 장면을 찍어 공개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며, 사회적 논란과 갈등을 조율해 국민을 하나로 만들어야 하는 자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암담하기만 하다. '인물이 없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견공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랴마는 우리 사회에서 '개'라는 단어가 들어간 말은 긍정보다 부정적인 경우가, 나아가 욕일 경우가 많다. 귀여운 새끼도 개가 붙으면 욕이 된다. 그런데 '개사과' 사진이라니, 국민 입장에선 개에게 그냥 감을 줄 수밖에 없다. '개유감'이다.
박선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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