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인생은 경쟁이 아냐..나만의 점 찍으며 나아가야"
평범한 카이스트 대학원생
학회에서 스카우트 제의받아
12년간 좌충우돌 나사 근무
달 음전하를 전력으로 전환
나사 특허상 3회나 수상
"나사는 인생 계획에 없던 일이었어요. 매일 제 업무는 '꿈 안에 살면서 새로운 꿈을 꾸는 것'입니다."
연세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뒤 KAIST 대학원에 다니던 그는 2008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다가 나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국에 돌아오니 '박사후 연구원(포닥)'을 나사에서 해보자는 메일이 와 있었다. 포천에서 태어나 서울·대전에서 공부하던 평범한 대학원생이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나사의 일원이 된 것. 우주 탐사에 기여할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그가 도착한 곳은 미국 버지니아주의 나사 랭글리 리서치센터였다.
행성 탐사에 사용될 소재가 그의 주 연구 분야다. 달 탐사에 사용될 '정전 발전 장치'가 대표적이다. 달의 표면에 쌓인 먼지는 20세기 달 탐사의 골칫거리였다. 달은 진공 상태에서 발생하는 음전하 탓에 먼지가 들러붙는다. 쉽게 말해서 정전기로 옷과 신발에 먼지가 덕지덕지 낀다는 얘긴데, 우주복에 쌓인 먼지는 눈앞을 흐리고, 심하면 우주선 내에서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김 연구원이 참여한 팀이 해낸 발상은 20세기에는 없던 것이었다. '수천 볼트로 충전돼 있는 달 표면의 음전하를 활용해 아예 전력을 생산하기.' 표면의 음전하를 배터리에 모아 아예 전기로 사용하고, 먼지도 달라붙지 않는 일거양득을 이루겠다는 아이디어였다. 공상과학(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런 획기적인 발상의 시도로 김 연구원은 '나사 특허상'을 3회 수상했다.
"정전 발전 장치는 달 탐사선과 다른 시스템의 전원(電源)이 될 수 있고 인간에 끼치는 부작용도 완화시켜요. 나사 하면 로켓과학자만 생각하기 쉬운데 재료 없이 우주에 갈 수 있나요."
나사에서 우수연구팀상, 헨리 리드 우수논문상, 우수기술성취 메달 등을 받은 젊은 공학도가 '베이비 연구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건 아니었다. 하루 50통씩 쏟아지는 메일함을 보며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낙담했고, 영어도 서툴러 꾸지람을 받기도 했다. 신간 '점'에서 그는 고군분투하며 깨달은 일상의 교훈을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책 제목인 '점'은 근무처인 나사가 지향하는 우주의 별을 뜻하기도 하지만 삶 자체를 은유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낯선 환경과 연구의 무게감에 '매일 울면서' 지내던 어느 날 김 연구원은 어머니의 손편지를 받는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느 한 부분을 뛰어넘고 다음으로 갈 수는 없다. 삶에 주어진 점(點)을 찍고 앞으로 전진해야 선(線)이 되는 거야.'
"그 편지를 받고 '나만의 선을 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각자가 찍은 점은 삶의 발자취죠. 살아보니 인생은 경쟁이 아니더라고요. 자기의 점을 찍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거였어요."
12년째 그가 근무하는 나사 랭글리리서치센터는 2016년작 영화 '히든 피겨스'의 실제 무대로 흑인 여성 공학자들이 차별 속에서 우주탐사 기술을 연구한 바로 그곳이다.
"동아시아에서 온 여성이라고 해서 영화에서 보이는 과거처럼 홀대받는 경우는 없어요. 나사 동료들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는 '순수함'입니다. 경쟁이 아니라 서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어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제게도 나사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있겠죠. 신뢰할 수 있는 사람, 힘들어도 신나서 일했던 '북치는 에너자이저'처럼 기억되고 싶답니다(웃음)."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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