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단독 인터뷰] 이다영 "그리스 외 선택지 없었다"
“다시 코트 밟게 돼 감사할 뿐”
“데뷔전 날 너무 긴장해 실수 많았다”
“나도 새로운 사람 될 수 있을 거라 생각”
[마이데일리 = 그리스 유주 정 통신원] “언젠가 한 번쯤은 대중들이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단 한 번만이라도 그렇게 해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현지시간 지난 29일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이다영과 마주 앉았다. 오전 훈련을 마치고 낮잠을 한숨 자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다영은 쌍둥이 언니 이재영과 함께 지난 17일 그리스에 도착해 그리스 여자배구 A1리그 소속 구단 PAOK에 공식 합류했다. 레슬링 선수 출신이자 현 PAOK 구단주인 콘스탄티노스 아모리디스 회장이 이번 인터뷰를 위해 자신의 사무실을 흔쾌히 빌려 줬다.
이다영이 한국 언론과 대면 인터뷰를 가진 건 지난 6월 이후 처음이다. 오간 이야기를 맥락과 함께 최대한 그대로 옮기기 위해 인터뷰는 문답식으로 구성했다.
◆“선택지 없었다···그저 감사”
Q. 왜 그리스 리그를 선택했나.
A. 한국에선 배구를 할 수 없게 됐는데 그리스가 내게 문을 열어줬다. 선택이라기보단 ‘배구를 할 수 있다’는 데 감사했다. 그냥 너무 감사했다. 감사하다는 마음밖에 안 들었다.
Q. 테살로니키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재영과 무슨 이야기 나눴나.
A. 별 이야기 안 하고 잠만 열심히 잤다(웃음). 공항에 내렸을 땐 날씨부터 너무 달라 모든 게 새로웠다. 구단 관계자 분들이 나와서 꽃다발도 주시고 환대를 해 주셔서 많이 놀랐다. 테살로니키는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편안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까지 편안해지는 곳이다.
Q. 한국과는 여러모로 많은 것들이 다를 텐데.
A. 한국에선 오후 3시 반부터 훈련을 시작하는데 여기에선 훈련이 보통 오후 7시부터 진행된다. 한국에선 점심 시간이 한두 시간 정도로 많지 않다. 여긴 낮에 휴식 시간이 많다. 개인 시간이 4~5시간은 된다. 낮에는 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볼 훈련이 시작되기 전까지 푹 쉬는 게 나에겐 잘 맞더라. 그래도 운동 측면에선 다를 게 없다.
Q. 동료들과 의사소통은 잘 되나.
A. 일단 영어를 배우고 있다. 1대1 화상 수업을 듣는데, 어우, 머리 아프다(웃음). 생활영어 스피킹을 배우고 있다. 훈련 틈틈이 숙제도 한다. 그래도 배구 용어가 다 비슷하다보니 대화는 잘 된다. 마야(밀라그로스 콜라) 등 몇몇 선수들이 많이 도와준다. 이제 곧 통역사 언니가 그리스에 오는데, 그러면 동료들과 대화가 더 잘 되지 않을까 싶다.
Q. 밥은 잘 먹고 사나. 전속 조리사가 없어서 선수들이 식단을 직접 짜고 요리도 스스로 해야 한다던데.
A. 워낙 빵과 치즈, 샐러드를 좋아해서 아직까진 별 문제가 없다. 그리스식 다이어트, 그거 한국에서 지금 유행하지 않나. 내가 매일 먹고 있는 것들이다.
아모리디스 회장은 이다영-재영 자매를 위해 숙소 인근 식당 두 곳과 별도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두 선수가 필요할 때마다 음식을 주문하면 나중에 그가 대신 결제하는 식이다. 이다영은 “아주 맛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아모리디스 회장은 “두 선수에게 ‘나이스’하게 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고 말했다. 그는 “행복하게 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우선순위는 두 선수가 이곳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 그리스 생활을 즐기게끔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모리디스 회장과 이다영이 함께 포즈를 취했다.)
◆“데뷔전 당시 경기 감각 너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이다영은 테살로니키 도착 이틀만인 지난 19일 그리스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A1리그 ‘최강’으로 꼽히는 올림피아코스를 상대로 세트스코어 3대 0 완승을 거둔 데 이어 경기 MVP로도 선정됐다.
Q. 올림피아코스전 직후 유튜브 생중계 대화창에선 “다영 선수가 우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A. 아니다(웃음). 울진 않았다. 원래 잘 안 운다. 땀이 많이 나서 그렇게 보였나 보다. 그날 긴장은 많이 했다.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태였다. 나름 적응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달랐다. 훈련을 이틀밖에 안 했었다. 경기 감각이 너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아홉 달이라는 공백이 선수에겐 정말 긴 시간이다. 걱정을 너무 많이 했다. 그래도 코트에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러니까 ‘일단 재밌게 하자’고 생각하고 뛰었는데 이길 줄이야···.
Q. 걱정한 것치곤 너무 잘 하던데.
A. 내가 그날 실수가 많았다. 나는 실수를 하면 더 굳어지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동료들이 많이 도와줬다. 옆에서 볼 처리를 너무 잘 해줬다. 그러다보니 자신감을 서서히 찾아갔다. 1세트 땐 긴장을 많이 해서 딱딱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많이 풀렸다. 잘 하는 선수들과 함께 뛰다 보니 나까지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싶다.
아모리디스 회장은 이날 경기 직후 PAOK 남자배구팀 코치가 자신에게 “너희 세터(이다영)를 우리에게 넘기라"고 농담을 건네 왔다며 웃었다. 배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자신의 딸이 “경기가 너무 빨리 끝나서 ‘언해피(unhappy)’ 했다. 경기가 너무 아름다워서 더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고도 전했다.
아모리디스 회장은 “이다영-재영 자매를 딸처럼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쌍둥이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두 선수를 위해 스틱 차량을 마련해 놨는데, 자매가 운전이 익숙하지 않은 걸 알고 오토매틱 자동차를 다시 주문해 놨다고 한다. 그는 "운전 연수도 내가 직접 해줄 것"이라고 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Q. 코트를 떠나 있는 동안 마음은 어떻게 다스렸나.
A. 운동으로 풀었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달렸다. 영화도 많이 봤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가 하나 있다. ‘스타 이즈 본(A Star is Born)’인데, 매년 두 번은 본다. 그 영화를 다시 봤다. 새로웠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감정들을 깨닫게 됐다. 레이디 가가와 브래들리 쿠퍼 모두에게 감정이입이 되더라. 그리스에서의 1년이 지나고 나면 나 역시도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논란이 정말 많지 않았나. 내가 잘못한 부분들이 있었고, 반성을 많이 했다. 진심으로 성숙해지고 싶다.
Q. 한국 배구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다.
A.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이 없다. 너무 많이 예뻐해 주시고 아껴 주셨는데 실망을 많이 안겨 드렸다. 너무 죄송하다. 아직까지 저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겐 너무너무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편지 주시면 다 읽는다. 힘이 정말 많이 된다. 우리 팀도 사랑해 줘서 너무 고맙다.
◆“목표는 리그 우승, 성탄절만 기다린다”
Q. 밝게 말하고 있지만 어려운 점이 적지 않을 거라고 짐작한다.
A. 그리스에 올 때 배구화 네 개, 러닝화 두 개, 그리고 운동복만 가져왔다. 사복을 하나도 안 가져왔다. 나중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쇼핑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지난 주엔 동료들과 밥을 먹으러 갔는데 다들 너무 예쁘게 하고 왔더라. 나랑 재영이는 검은 운동복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쑥스러워서 빨리 나왔다. 사실 성탄절만 기다린다. 그 전에 경기 성과가 좋아야 하는데···.
Q. 콕 집어 성탄절을 기다리는 이유가 있나.
A. 트리를 한 번 직접 꾸며보고 싶었다. 며칠 전 시내에 나갔다가 성탄절 장식을 파는 가게를 봤다. 예쁘더라. 소소한 것, 귀여운 게 좋다. 사실 성탄절을 기다리는 것 외엔 휴가 계획도 없다. 어렵게 다시 코트를 밟게 된 만큼 일단은 경기와 훈련에만 집중하고 싶다. 지금 목표는 일단 그리스 리그 우승과 챔피언십 리그 본선 진출이다. 목표를 먼저 이뤄야 다른 생각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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