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알몸 김치, 국산 김치와 비교 못해" 김치명인 1호 얘기 들어보니 [방영덕의 디테일]
[방영덕의 디테일] 35년째 김치를 담가 팔고 있다. 일흔을 바라보고 있지만 여전히 새벽 3시까지 김치를 담그고 연구 삼매경에 빠진다. 김치제조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한 결과 깻잎양배추말이 김치, 미니롤보쌈김치, 미역김치, 황제김치 등 28건의 국내외 특허 등록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요즘 젊은 사람들 바쁘고 힘들어 김치를 담가 먹지 못하는 것을 이해한다"면서도 "김치를 아예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젊은이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돌직구를 날리는 한성식품 김순자 대표(68·사진), 그의 얘기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지정한 대한민국 김치명인 1호, 고용노동부가 선정한 식품명장 1호인 김 대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중국의 김치 공정'에 대해 "종주국 지위를 잃으면 역사를 빼앗기는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김치 종주국임을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26일 경기도 부천 한성식품 본사에서 그를 만나 관련 얘기를 더 들어봤다.
◆ 사그라들지 않는 중국의 김치공정
-중국과의 김치 종주국 논란이 계속되는데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의 김장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 있지만 김치 자체는 등재돼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중국은 계속해서 한복, 판소리뿐 아니라 김치까지 한국 고유문화를 자신들의 것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올해 1분기 김치 수출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 속 해외에서도 김치가 우리 몸의 면역력을 높이는 건강식품이란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 최근 중국에서 이른바 '알몸 절임배추' 영상이 퍼지며 중국산 김치 수입량이 소폭이나마 줄었는데, 이런 때일수록 정부가 나서서 김치 종주국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김치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해 11월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중국 쓰촨성에서 유래한 절임채소 '파오차이(泡菜)'가 국제표준화기구(ISO)로부터 국제표준 인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이제 김치 종주국이란 타이틀이 유명무실해졌다"며 "중국이 김치산업의 국제표준이 됐다"고 주장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김장의 계절이 돌아오자 중국 유명 유튜버들은 김치가 마치 자국의 고유 음식인 것 마냥 설명하는 영상을 올려 김치 종주국 논란이 계속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중국과의 외교 문제 등이 얽혀 해결책 마련이 쉽진 않아 보이는데.
▷물론 쉽지 않지만 (김치 종주국으로의 선언은) 필요한 일이다. 우리 조상들은 1300년 전부터 김치를 연구 개발해 완성해왔다. 김치 종주국 지위를 잃으면 곧 우리 역사를 빼앗기는 것이다. 중국의 파오차이는 파오차이대로 인정해 주되, 김치 종주국으로서, K김치의 지위는 정부가 나서서 지켜야 한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병 무렵 김치를 주목하게 된 중국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한국 수출량을 점차 늘려 왔다. 우리나라 식당 등에서 원가 부담으로 중국산 김치를 사용하면서 전체 수입량 90% 이상을 중국산 김치가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중국이 기세등등한 이유다.
그러나 지난 3월 중국에서 알몸의 인부가 구정물에 절인 배추를 녹슨 굴삭기로 퍼 올리는 알몸 절임배추 영상이 국내에 퍼지며 중국산 김치의 위생 문제가 크게 불거졌다. 최근에는 맨발로 새빨간 김치 양념을 만드는 영상이 또 SNS상에서 알려져 사람들은 식당에만 가면 "중국산 김치 쓰냐"고 물어보며 찜찜해했고, 국산 김치를 찾는 계기가 됐다.
―시민들은 중국 김치공정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감정적인 대응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억지 주장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는 없으니까. 대신 논리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사실, 채소를 절여 먹는 문화는 세계 어느 문화권에나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말하는 파오차이 만드는 방식과 모양이 김치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김치를 꼭 먹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강조하고 싶다. 요즘 젊은이들과 얘기 나누다 보면 "난 김치를 안 좋아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 고유 음식을 부정하는, 부끄러워해야 할 말이다.
김치를 많이 먹되 특히 국산 김치를 고집할 필요가 있다. 으레 식당이나 배달음식에서 나오는 중국산 김치 대신 국산 김치는 없냐고 묻고, 식당 주인에게 요청해 많은 소비자들이 원하니 중국산 대신 국산 김치로 바꾸게끔 만들어야 한다.
― 파오차이와 김치의 차이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
▷파오차이는 소금에 절인 채소를 바로 발효하거나 끊인 뒤 발효하는 쓰촨의 염장 채소를 말한다. 그래서 김치보다는 피클에 더 가깝다. 대부분 채소 절임 식품은 채소를 소금이나 식초 등에 절여 먹는 반면, 김치는 1차로 배추, 무 등 원래 채소를 소금에 절인 후 절인 채소에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각 등 다양한 채소를 부재료로 양념해 2차 발효시킨 음식이다.
생채소를 1, 2차로 나눠 발효시키는 식품은 전 세계적으로 김치가 유일하다. 중국이 ISO 표준을 제정한 파오차이는 김치처럼 추가 부재료를 사용해 2차 발효시키지 않는 데다 살균 공정을 거쳐 발효가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김치와는 전혀 다른 식품이다.
◆ 돌아온 김장의 계절… 중국산 구별하고, 비용 줄이는 비법은
코로나19 사태로 '우리 집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던 김장을 포기한 집들이 주변에 많다. 거리 두기로 외출이 어려워지며 장보기가 힘들어진 탓이다. 하지만 이미 시중에서 파는 절인 배추와 속(양념)만 잘 사도 집에서 손쉽게 김치를 담가 먹을 수 있다고 김 대표는 말한다.
―집에서 김치를 쉽고, 맛있게 담가 먹는 꿀팁이 있다면.
▷시중에서 파는 절인 배추와 속만 잘 사면 김장은 거의 한 셈이다(웃음). 이때 절인 배추는 살짝만 절인 배추가 좋고, 속은 식구들 입맛에 따라 굴, 오징어, 명태, 조기, 젓갈 등을 또 따로 추가하면 좋다.
김장할 때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은 김치를 군내 안나고 오래 잘 먹으려면 국물이 잘박잘박한 게 좋다는 것이다. 또 김치통의 80% 이상 김치를 담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유산균이 발효될 수 있는 공간을 놔두기 위해서다. 김치를 통에 다 담은 후에는 공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탁탁' 쳐줄 필요가 있다.
김치통에 다 담은 김치 위는 꼭 속 비닐지로 덮어줘야 한다. 공기와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서다. 김치를 꺼내 먹을 때에도 공기와의 접촉은 차단하고, 절대 물이 닿아선 안 되며 비닐장갑을 낀 채 꺼내는 게 좋다.
―김장은 언제 하는 게 좋을까.
▷ 원래 11월 10일께부터 12월 10일께 그사이에 끝내는 게 우리나라 김장 문화다. 김장은 절기 따라 하는 것이니까. 이렇게 11월에 담가 이듬해 5월까지 먹는 게 군내 안 나고 너무 시지 않게 가장 맛있게 (김치를) 먹을 수 있는 시기다.
김치를 담근 후 3~5시간 지난 것, 10시간 지난 것, 하루 이틀 정도 지난 김치 등 이렇게 3통 정도 나눠 담아 보관을 하면 시기별로 익은 김치를 더 오래 놔두고 먹을 수 있는 것도 팁이다.
―올해 배추, 무는 물론 고춧가루 가격 등이 많이 올라 김장 비용 부담이 크다.
▷ '빨갈수록 맛있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면 김장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다. 고춧가루 얘기다. 고춧가루는 김장 비용의 약 20%를 차지한다. 주재료인 배추와 무 등을 제외하면 가장 큰 액수인 셈이다. 따라서 김장 비용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고춧가루에서 작은 변화만 줘도 김장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매년 넣었던 고춧가루의 양을 절반 이하로 줄이는 과감한 시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도 김치 맛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김치의 시원한 맛은 더 나고, 영양도 떨어지지 않는다.
―김치 고유의 빨간 빛을 잃어 맛이 없다고 생각이 들면 어떻게 하나.
▷김치는 뭐니 뭐니 해도 빨개야 하는데 고춧가루 양이 줄어 빨간 빛을 잃을까 걱정이 된다면 고운 고춧가루와 중간 고춧가루를 적절히 섞어 색을 내면 된다. 매운맛을 더 원할 때는 청량고추를 넣는 것도 방법이다.
단, 김장 비용을 아끼겠다고 중국산 고춧가루를 쓰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중국산 고춧가루는 색깔이 아주 빨개 예뻐 보일 순 있다. 실제로 국산 고춧가루는 홍색 빛깔이다. 그래서 색깔만 보면 중국산이 좋아 보일 순 있지만 국산 고춧가루처럼 칼칼하고 시원한 맛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산 고춧가루를 사용한 김치는 빨리 익어 쉽게 물러져버린다. 우리 아이들이 먹는다고 생각하면 값이 좀 나가더라도 좋은 재료를 고집할 수밖에 없다.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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