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자에 인신매매당해 노예로 10년 넘게 살았습니다" .. '노예 12년' 영화 리뷰 [씨네프레소]
*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⑧ 영화 '노예 12년' 리뷰
지난 14일 대법원 2부는 n번방 주범 조주빈에게 42년형을 확정했다. 여성을 노예로 부르며 물건처럼 다룬 그는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조주빈과 엮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유로운 생활을 하던 피해자들은 순식간에 그에게 성적 착취를 당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헌법을 통해 만인의 평등을 보장하는 현대사회에서 가해자들은 노예제가 유지되는 자신들만의 SNS 세상을 만들어 피해자 인권을 짓밟고 있었던 것이다.
'노예 12년'(2013)은 노예제가 존재하는 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파고든 작품이다. 가족들과 뉴욕주 새러토가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던 바이올린 연주자 솔로몬 노섭(추이텔 에지오포)은 1841년 돌연 납치돼 노예 수용소로 보내진다. 플랫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그는 노예주(州·노예제를 인정하던 미국 남부의 여러 주)로 팔려가 채찍질을 당하며 목화를 따게 된다.
◆ 미국 노예제 폐지되자 횡행한 흑인 납치
솔로몬 노섭이 납치된 1800년대 미국은 노예제도를 기준으로 남부의 노예주와 북부의 자유주로 구분됐다. 당시 목화 생산이 급증하며 노예 수요도 올라갔고 1790년부터 1808년까지 미국으로 노예 약 8만명이 수입됐다. 1808년에 노예 수입이 금지된 이후 미국 전역에서 자유인 신분의 흑인을 납치해 인신매매하는 사건이 횡행했다.
이 영화는 1841년 납치돼 1853년까지 노예 생활을 했던 솔로몬 노섭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그는 자신을 곡예단에 섭외하고 싶다는 두 백인 남성과 술을 마시다가 깨어난 뒤 쇠사슬에 결박된 스스로를 발견한다. 두 남성은 그를 노예상에게 넘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솔로몬 노섭은 노예상에게 "난 자유인이고 새러토가에 산다"고 목소리 높인다.
노예상은 "넌 자유인이 아니고 새러토가 출신도 아니며, 조지아에서 도망친 깜둥이"라면서 매질을 한다. 이어 그와 다른 흑인들을 세워놓고, 여러 고객을 불러 쇼핑하게 한다. 고객이 흑인의 건강 상태를 궁금해하면 뛰어보도록 시키고, 입을 벌려 치아를 보여주며, 몇몇은 옷을 아예 벗겨 놓는다.
일련의 과정은 흑인들을 종속 상태에 놓으려는 심리적 조종이다. "너희들은 그냥 상품처럼 판매되는 존재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달하는 것이다. 부당한 대우에 항의했을 때 가축을 다루듯 채찍질을 가해 주인에게 굴종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거듭되면 언젠가 탈출해서 자유인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도 일단 목숨을 부지해야 하기에 웬만한 굴욕은 견디게 된다.
◆ 선한 노예 주인은 존재하나
'노예 12년'에는 두 종류의 노예 소유주가 등장한다. 하나는 노예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선한 주인이다.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노예상이 노예 딸과 엄마를 따로 떼서 팔려고 하자 "최소한의 양심도 없냐"고 묻는다. 노예들도 휴식할 수 있게 배려해주고, 그들 의견 중 합리적인 것은 채택한다. 포드는 솔로몬 노섭에게 감사의 표시로 바이올린을 선물하기도 한다.
또 다른 주인은 노예를 최대한으로 착취하는 에드윈 엡스(마이클 패스벤더)다. 그는 한밤중에 자신의 흥을 돋우기 위해 노예들을 깨워 춤을 추게 한다. 걸핏하면 채찍질을 하고, 여자 노예에 대한 성희롱도 빈번하다. 노예에게 감정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재산으로 관리할 뿐이다.
같은 노예 생활이라도 엡스보다야 포드 집에서 하는 편이 나은 건 당연하다. 일부 주인들은 흑인 노예가 자신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면 관리직을 부여하고, 시종도 부릴 수 있게 해줬다. 솔로몬 노섭의 삶은 주인이 엡스로 바뀐 후 훨씬 고달파졌다. 엡스는 노섭이 다른 노예에게 채찍질하는 상황까지 강요한다.
그러나 포드 역시 노예 주인일 뿐이다. 영화엔 그가 솔로몬 노섭이 자유인 출신이었던 걸 아는 듯한 정황이 몇 차례 포착된다. 포드의 상상력은 '노예들에게 잘해줘야 한다'까지는 미치지만 '노예를 두는 건 인륜에 어긋난다'로 도약하지 못한다. 노예를 부리는 삶의 안락함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의 결말을 알고 싶지 않다면 이 단락은 넘어가세요) 나만 노예가 아니면 되는 건가
솔로몬 노섭은 10년 넘게 노예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을 내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늘 자유를 되찾는 순간을 갈망했다. 도망갈 길을 탐색하고, 친구들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결국 노예제는 불의한 것임에 동의하는 베스(브래드 피트)의 도움을 받아 친구에게 연락하고 가족들과 상봉하게 된다.
이 영화는 솔로몬 노섭이 빼앗겼던 자유를 회복하는 작품인 동시에, 자유인인 노섭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그는 처음 노예상에게 잡히던 날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나는 원래 자유인"이라고 강조한다. "나는 원래 노예가 아니기에 이런 취급을 받아선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노예인 흑인들의 삶을 10년 넘게 들여다보며 뼈저리게 느낀다. "원래 노예 취급을 받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는 걸 말이다. 그는 자유인이 된 뒤 '노예 12년'을 출간해 미국의 민낯을 폭로하고, 노예제의 폐해에 대해 강연하며 노예 탈출을 도왔다. "내가 자유인이라고 이 세상이 자유로운 건 아니다"라는 깨달음에 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현대 사회의 관객들에게도 의미가 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자유를 누리고 사는 시대이지만, 한쪽에선 n번방, 염전 노예, 어린이 강제 노동 등 현대판 노예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 군대, 직장에서의 폭력에 신음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운이 좋아 그런 폭력을 당하지 않는 세상에 태어났다고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고 살 것인가. 아니면 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 작은 실천이라도 할 것인가. 약 200년 전의 실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장르: 드라마, 역사
출연: 추이텔 에지오포, 마이클 패스벤더, 베네딕트 컴버배치, 루피타 뇽오, 브래드 피트
감독: 스티브 매퀸
수상: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여우조연상·각색상
평점: 왓챠피디아(3.8), 로튼토마토 토마토지수(95%), 팝콘지수(90%)
※10월 29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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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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