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 두 사령탑의 오늘을 만든 행크 애런, 하늘에서 누구를 응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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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행크 애런이 살아 있었다면 과연 어느 팀을 응원했을까? 단 두 시즌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뛴 것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브레이브스에 몸담았던 만큼 겉으로는 애틀랜타를 응원했겠지만, 속으로는 어느 정도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응원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애런이 없었다면 이번 시리즈의 양 팀 사령탑인 베이커 감독은 물론, 브라이언 스니커 애틀랜타 감독도 현재의 그 위치에 없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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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LA, 이사부 통신원] 만약 행크 애런이 살아 있었다면 과연 어느 팀을 응원했을까? 단 두 시즌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뛴 것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브레이브스에 몸담았던 만큼 겉으로는 애틀랜타를 응원했겠지만, 속으로는 어느 정도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응원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 같다.
월드시리즈는 휴스턴에서의 1, 2차전에서 1승 1패를 기록하고 애틀랜타 트루이스트 파크로 무대를 옮겨 30일(한국시간)부터 3~5차전을 치른다.
트루이스트 파크 외야 한가운데에는 이번 시즌 내내 '44'가 새겨져 있었다. 영구 결번된 애런의 등 번호다. 물론 디비전시리즈와 챔피언십시리즈에서도 애런의 등 번호는 새겨져 있었고, 월드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뿐 아니라 이번 월드시리즈는 트루이스트 파크에 새겨진 '44' 외에도 지난 1월 23일 타계한 애런의 각인이 확실하게 찍힌 시리즈다. 더스티 베이커 휴스턴 감독이 "행크의 발자취가 이번 시리즈를 완전히 덮고 있다"고 했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애런이 없었다면 이번 시리즈의 양 팀 사령탑인 베이커 감독은 물론, 브라이언 스니커 애틀랜타 감독도 현재의 그 위치에 없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스니커 감독은 "애런은 우리들이 이 자리에 있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이다. 그가 우리에게 했던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우리들은 죽을 때까지 그를 사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애런은 베이커 감독이 지난 1967년 18세 때 애틀랜타와 틴에이저 외야수로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한 장본인이다. 당시 애런은 베이커 감독의 아버지가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지역에서 야구하는 것을 크게 반대했지만, 어머니에게 자신이 책임지고 돌보겠다는 약속을 한 뒤 그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애런은 그 약속을 베이커 감독이 선수 생활을 마친 뒤까지 확실하게 지켰다. 베이커 감독은 19세였던 1968년 애틀랜타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첫 경기가 당시엔 내셔널리그에 있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였다.
은퇴 후 애틀랜타의 육성 디렉터를 맡았던 애런은 스니커 감독에게 지도자로서의 길을 열어주었다. 당시 스니커 감독은 포수 또는 1루수로 뛰긴 했지만 그다지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저 그런 선수였다. 그러나 애런은 그에게 코치로 게임에 남을 것을 권유했다. 이후 스니커 감독은 애틀랜타의 조직에서 인스트럭터, 코치, 감독으로 40년을 일하고 있다. 애틀랜타 감독으로는 벌써 6년째다.
올해로 72세인 베이커 감독과 66세인 스니커 감독은 둘 다 첫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그들은 월드시리즈를 치르면서 똑같이 애런의 존재감을 느낀다고 말하고, 자신들의 멘토를 자랑스럽게 만들고 싶어 한다.
베이커 감독은 만약 애런이 살아 있었다면 "그는 나에게 전화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가장 먼저 미스터 더스티 베이커라고 나를 부른 뒤 웃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했다.
스니커 감독은 "애런은 우리가 해낸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라면서 "아마 그는 누가 듣던 간에 자랑을 하고 다녔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의 한 챕터를 장식하고 있는 행크 애런은 타계 이후에도 이렇게 큰 영향을 메이저리그에 미치고 있다. /lsboo@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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