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축구공이니" 동거녀 상습 폭행해 극단적 선택 이르게 한 조폭에 중형

김정엽 기자 2021. 10. 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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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블랙박스]
법원/신정훈 기자

사실혼 관계인 동거녀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폭력 조직원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전주지법 형사4단독 김경선 부장판사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북 전주의 한 폭력 조직원 A(39)씨에게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했다고 30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9월 11일 오전 4시쯤 전주시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사실혼 관계에 있던 B(여·당시 37세)씨를 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B씨는 다음날 ‘너의 바람대로 이 세상에서 사라져 줄게’라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서엔 ‘너의 바람대로 이 세상에서 사라져 줄게’

검찰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금전적인 문제와 A씨의 전처 문제로 자주 다퉜다고 한다. B씨는 평소 A씨가 전처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의심을 했는데, 이날도 이 문제로 다툼이 시작됐다. 격분한 A씨가 B씨 목을 조르고, 머리를 바닥에 내려쳤다. 이어 주먹과 손바닥으로 B씨 얼굴 등을 수차례 때리고, 발로 머리를 밟기도 했다. 이 때문에 B씨는 두개골이 골절되는 등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었다.

정신적 충격을 받은 B씨는 다음 날인 지난해 9월 12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B씨는 휴대전화에 장문의 글과 폭행당한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남겼다. 자신의 엄마와 오빠에겐 ‘너무 나 자신이 비참하고, 이런 꼴을 당하고 사는 나 자신이 너무 수치스럽고 자존심이 무너져서 살 수 없어’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B씨는 유서에 A씨 범행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너 때문에 내가 죽으려고  시도를 두 번이나 했었지. 그렇게 너에게 맞으면서. 이번이 마지막 세 번째가 될 거야’ ‘너의 바람대로 이 세상에서 사라져 줄게’ ‘너한테 맞아 죽으나. 목 졸림 당해 죽는 것보단 내 스스로 죽는 게 나을 거 같다’ ‘바닥에 머리를 내려치고 주먹으로 손바닥으로 발로 내 머리를 밟고. 내가 축구공이니?’라고 적었다.

앞서 A씨는 지난해 6월 28일에도 B씨를 폭행해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며칠 뒤 B씨는 자해해 병원에 입원해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안 때렸다” 범행 부인, 유족은 두 번 울었다

검찰은 A씨에게 상습 상해죄를 적용해 구속 기소했다. 당시 유족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며 “평소 A씨가 딸을 잔혹하게 때렸고 이게 사망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A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 조사에서 그는 “사망 전날 B씨의 뺨 두 대를 때렸고, B씨가 (자신을) 폭행하려고 달려드는 줄 알고 이를 뿌리치다가 손등으로 눈 부위를 한 대 친 것 외에는 심하게 폭행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재판 과정에선 “B씨가 사망 전에 생긴 외상은 자해한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 변호인은 B씨의 폭력적인 성향을 부각시키려 했다. “딸이 호불호가 뚜렷한가” “술에 취하면 B씨는 어떤 상태였나” “B씨가 전처와의 관계를 문제 삼았나” 질문했다. 이를 지켜보던 B씨 엄마는 고성을 지르며 울먹였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폭행”, 법원은 징역 5년 6개월 선고

법원은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폭행 사실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했다. 김 판사는 지난 27일 판결을 선고하면서 “A씨가 혐의를 극구 부인하는 상황에서 B씨가 이미 사망해 진술을 들을 수 없었다”며 “B씨가 남긴 문자 메시지와 사진이 범죄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신빙성 있는 증거인지는 주변 정황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판사는 부검의 판단을 유죄 근거로 들었다. B씨를 부검한 부검의는 ‘왼쪽 눈 부위 두개골에 심하게 금이 가 있고 오른쪽 눈 부위 두개골도 골절이 있다. 이는 주먹으로 심하게 폭행을 당한 흔적으로 보이며, 안와골절은 통상적으로 주먹으로 때려 발생하는 골절’이라는 의견을 냈다. B씨 왼쪽 쇄골에 난 멍 자국은 누워 있는 사람을 누르거나 폭행을 가했을 때 나올 수 있다는 의견도 냈다. 한 법의학 교수는 ‘B씨 우측 이마 부위 피하출혈, 우측 턱과 쇄골 부위의 멍은 여러 차례 반복적 충격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냈다.

김 판사는 “B씨는 여러 차례 자해하면서도 A씨를 ‘가장 의지 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며 “그런 B씨가 멍으로 가득 찬 얼굴을 마지막 사진으로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밝혔다. 이어 “B씨가 숨지기 전 A씨를 원망하는 글과 사진을 남겼던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유족들이 엄벌을 탄원하고 여러 차례 동종 전과로 처벌받은 전력을 감안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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